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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칼럼]북한 문제에 관해 생각한다

방민호 발행일 2019-12-24 제22면

'강대국만 핵을 가질수 있다' 발상
美 불평등체제 어떤 도전도 용납못해
北 여전히 핵무장 포기 않는 정황
자신들 뜻대로 안 움직이는 美 대신
'말리는 시누이' 한국에 불만 쏟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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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최근 들어 남북관계가 아주 악화된 듯한 인상이다. 지난 두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반면, 최근의 남북 관계 악화는 다소 의외라는 느낌을 준다. 곰곰이 따져 보면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릴 일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은 지금 핵 문제를 둘러싸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데,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겉으로는 서로 사이가 좋은 것 같은 포즈를 취하지만 가슴속 생각은 전혀 다른 것 같다. 미국은 지속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을 문제 삼고 있는데, 북한은 어떻게든 완전한 핵무장 해제는 피하려 하고 있다. 미국의 요구는 물론 강대국들만 핵을 가질 수 있다는 식의 '특이한' 발상에서 나온 것이지만 이러한 '불평등' 체제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쪽에서는 핵이야말로 현재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완전하게 들어줄 생각은 있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시선이 집중된 길주 풍계리 같은 곳의 핵시설은 폐기하는 포즈를 취하기는 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는 듯한 정황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과연 북한과 미국의 '대타협'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극히 불확실해 보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곤란은 특히 한국 정부 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는 지난 정부와 달리 남북한 사이의 긴장 완화, 평화 안착을 추진해 왔다. 한국 정부가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하는 제3자적 위치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 안정이 급선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각종 경제 제재 등 북한에 대한 국제적 압박을 풀어줄 수 있는 실질적 힘은 미국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북한 쪽과 '주체적인' 대화, 교류, 협상을 시도하는 것도 좋은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미국 대신에 '말리는 시누이'격인 한국정부를 향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남북 대화, 교류의 상징인 금강산의 현대 시설물들을 철거하라는 식의 난폭한 요구는 '겉으로는' 남북 대화, 교류, 협상을 추진하면서도 '속으로는' 미국 뜻 안에서 움직이는 한국 정부를 향한 불만을 표현한 것이라고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와 현 정부의 대북한 유화 정책에 대한 비난에 시달리며 어떤 성과에 목말랐을 정부로서는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진퇴양난의 질곡에 빠진 셈이 되었다. 과연 어디서부터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것일까? 물론 필자는 이런 큰 문제에 문외한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른바 '급진사상'에 경사된 경험을 가진 386세대의 일원으로서 북한 체제에 대한 판단이 일층 근본적으로 날카로워져야 한다는 점을 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 현재의 북한 체제가 전체주의 체제의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독일 나치즘,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 천황제 파시즘, 구 소련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같은 전체주의 체제들은 국가 목적 아래 사회 전체 구성원을 획일적으로 정렬시키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고, 현재의 북한 체제는 그러한 메커니즘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열거한 전체주의 체제들에서 국가 위에 당이 군림하고 있었던 바, 현재의 북한 체제는 그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이 체제의 변화를 가능케 할 수 있을까? 하면 한국사회의 많은 사람들, 세력들이 생각하고 있듯이 무조건 틀어막는 것이 능사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 체제의 여러 문제들을 외면한 무조건적인 용인과 대화, 협상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종의 도그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지혜로워질 수 있을까? 하고 필자는 생각해 본다. 여당과 야당, 또 그들을 둘러싼 시민운동 단체들이 각자의 견해만을 내세우며 대립하는 방식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을 것 같다. 서로가 가진 문제의식과 해법의 가능성을 두루 포용하고 또 함께 풀어가자는 지혜로운 태도만이 '우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북한 체제에 대한 협상과 비판 모두를 포용하는 더 큰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나 할까. 그러려면 '우리'는 먼저 '내'가 대립하는 상대방이 바로 '우리'의 일원임을 깨우쳐야 하리라.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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