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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용변보는 소리 들으며 점심'… 화장실 안 휴게실, 상식 밖 마사회

배재흥 배재흥 기자 발행일 2019-12-09 제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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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화장실 안에 있는 한국마사회 '렛츠런 파크 서울' 마필 관리사동 미화원 휴게실. 지난달 29일 한상각(오른쪽) 과천지회장과 조합원이 대변기 옆에 딸린 휴게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서울경마공원 한편에 칸막이 '열악'
'평균연봉 공기업 1위 정규직' 이면
미화원 비정규직 처우 개선 '묵살'
정부 지침 무시… 사측 "내부사정"


매출 7조5천억원의 우량 공기업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가 비정규직인 서울경마공원 미화원의 휴게공간으로 달랑 화장실 한 칸을 내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또 '상식 밖'의 노동 현실을 개선해달라는 미화원들의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묵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부산의 경마 기수가 내부 비리를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더불어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경마장 미화원 사례는 마사회가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정규직 평균 연봉 공기업 1위, 비정규직은 화장실 신세




마사회 정규직 직원 평균 연봉은 9천209만원이다. 국내 (준)시장형 공기업 36곳 중 가장 높다.

 

소속 직원에 대한 처우도 좋기로 정평이 나 있지만 '정규직'에만 해당된다.

비정규직인 미화원의 처우 수준은 '휴게공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마사회지부 과천지회가 최근 '렛츠런파크 서울(경마공원)' 내 미화원 휴게실·쉼터를 전수조사한 결과 51곳 중 14곳이 화장실 안에 있거나 입구 언저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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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조차 마음대로 펼 수 없는 조교사협회 건물 계단 아래 설치된 휴게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화장실 다음으로 많았던 장소는 '계단 밑'이다.

회사에서 지급되는 물품이 없어 냉·난방기구 및 냉장고 등 비품을 정규직원이 버린 것을 주워다 쓰기도 한다.

■ "우리는 사람 아닌 청소용품"


고객들이 용변 보는 화장실 안 쉼터에서 만난 미화원(익명 요구)은 자신을 '청소용품'이라 불렀다.

"고객들이 용변 보는 소리를 들으면서 쉰다"는 그는 사측이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을 두고 "(미화원을)사람 이하로 취급해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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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마공원 해피빌(관람대) 3층 여자 화장실 안 쉼터에서 주전부리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미화원의 뒷모습.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이들이 부르는 쉼터는 화장실 한편에 간이 칸막이를 설치한 게 전부다.

칸막이가 설치된 이곳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같은 층 또 다른 여자 화장실은 가림막조차 없어 고객들과 어색한 눈인사를 나눠야 한다.

한 미화원은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 힘들었다. 오히려 불편하다는 고객들도 있어 괜히 죄 지은 기분이 든다"고 털어놨다.

계단 바로 아래 구석진 공간을 휴게실로 쓰는 한 미화원은 지난 9월부터 휴게실 온도를 달력에 빼곡히 적고 있다. 

 

해당 미화원은 "휴게실의 열악함을 이렇게라도 증명하려고 적어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관 1층 계단 아래 공간에 마련된 휴게실에 쉬는 한 미화원이 지난 9월부터 달력에 적어둔 내부 온도.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는 최소 면적 6㎡를 확보한 공간에 소파, 생활가전 등을 비치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업장 휴게시설 설치·운영지침을 마련했다. 

 

마사회는 이 같은 지침을 1년 넘도록 무시해온 것이다.

한상각 과천지회장은 "사측은 미화원이든, 기수든 어떤 사안에 대해 차별하지 말아 달라는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사회는 미화원의 휴게공간과 관련한 경인일보 질문에 "내부사정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고 했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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