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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깨우친 양주 한센촌 할머니들의 시집

최재훈 최재훈 기자 발행일 2020-01-10 제9면

양주 천성마을 '행복학습관' 교육
평생 담아둔 생각 82편 작품으로

양주 천성마을_늙은 책가방
양주시 천성마을 할머니 시인들이 최근 출간한 시집 '늙은 책가방'. /서정대학교 제공
"하니까 됩디다. 이 나이에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센촌'으로 알려진 양주시 천성마을에 사는 일곱 분의 할머니들은 나란히 시집 한 권씩을 손에 들고 수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늙은 책가방'이란 제목의 이 시집은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을 시인으로 만들어 준 첫 작품이다. 제목 아래에는 김예동·백만금·여애은·오문자·윤춘애·이덕조·임봉남 등 할머니의 이름들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이들은 한글을 읽고 쓸 수 없는 것을 그저 한으로 안고 살았다. 어린 시절 한센인에 대한 사회의 냉대로 학교 문턱도 밟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글을 깨우치게 된 것은 2010년 경기도가 한센촌 사회문화복지사업으로 마을에 '행복학습관'을 세우면서다. 이곳에서는 이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주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한글뿐 아니라 영어와 한자, 춤, 노래, 그림 등 다양한 교양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이곳은 양주시로부터 위탁받은 서정대학교가 현재 운영 중이다.

이곳을 학교라 여기고 열심히 다닌 할머니 시인들은 한글을 깨우치며 평생 마음에 담아뒀던 생각들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시를 쓴 건 지난해부터다.

서정대가 현직 작가를 초청해 진행한 문학창작 수업이 동기가 됐다. 시를 쓰는 게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은 창작의 매력에 빠졌다.

이렇게 10개월 동안 수백 편의 시가 쌓였고 이들을 지도한 작가 선생님은 이 중 82편을 추려 시집을 내기로 했다. 시집 발간에는 경기도와 양주시 평생교육진흥원, 서정대가 힘을 모았고 마침내 지난해 말 꿈에 그리던 첫 시집이 발간됐다.

학습관 운영을 맡고 있는 서정대 염일열 지역발전연구소장은 "이들은 시집 발간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욱 다양한 창작활동을 할 것이며 학습관은 이들의 활동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예동 할머니는 "처음엔 정말 어려웠는데 하니까 되더라"며 "노력하면 못 이룰 게 없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삶의 희망이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양주/최재훈기자 cj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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