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흑인살해 촉발 BLM운동 확산속
이들에 맞선 All lives matter시위
얼핏 들으면 포괄된 가치의 말이나
'발화된 상황' 안맞을땐 조롱의 뜻
말은 자격있는 사람이 외칠때 진리 |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지난 5월말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이 흑인 시민을 무릎으로 눌러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살해당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는 숨지기 직전 "숨을 쉴 수 없다"는 말을 했고 이후 여러 차례 '엄마'를 불렀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찾았던 것이다. 그를 살해한 경찰관은 그 말을 듣고도 "말을 할 수 있다면 괜찮은 건데?"라고 조롱하며 무릎의 힘을 풀지 않았고 결국 조지 플로이드의 숨은 끊어지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부르는 사람을 살해한다는 것은 어머니 앞에서 자식을 죽이는 것만큼이나 잔인한 일이다. 인간으로서는 차마 저지를 수 없는 이 야만적인 살인사건은 한 시민이 소셜 미디어에 자신이 촬영한 동영상을 공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경찰관이 백인이었고 살해 당한 시민이 흑인이었기에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한국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이에 공감하여 BLM(Black lives matter) 해시태그운동에 동참했다.
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는 구호를 외치며 인종 차별 반대 시위에 맞섰다.
얼핏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은 아무 문제가 없을뿐더러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보다 오히려 더 나은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의 생명' 안에는 '흑인의 생명'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이란 그 말이 발화된 상황과 떼어놓을 수 없다. 어떤 말이 진리에 가깝기 위해서는 그 말이 나오게 된 상황이 그 말과 일치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어떤 혐오도 담고 있지 않지만 지하철 경로석에 붙여두면 경로우대에 대한 조롱으로 읽힐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도 그 자체로는 어떤 혐오도 담고 있지 않지만 그 말을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향해 내뱉을 경우에는 조롱과 경멸의 표현이 된다. 소중하게 여겨야 마땅한 '모두의 생명' 속에 흑인의 생명은 포함시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자들이나 할 수 있는 염치없는 말이다.
말은 누구를 향해 하느냐가 중요하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흑인의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과 흑인이 잔인하게 살해당한 구체적 사건에서 발화된 것이며, 백인의 생명은 소중히 여기면서 흑인의 생명은 동등하게 중시하지 않는 이들을 향해 절규하듯 외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이미 흑인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 외치는 말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
BLM운동이 전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 6월14일 영국에서는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이에 반대하는 극우파 시위대가 충돌했는데, 이 과정에서 흑인 시위대에게 맞아 피 흘리던 한 극우파 백인 시위자를 흑인 시위자가 도와서 피신시킨 것이다. 아마도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자신을 쫓던 악랄한 경찰관 자베르의 생명을 구해준 장발장의 모습이 저랬을까싶다. 장자크 루소는 '에밀'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학생이 모든 사람들을, 심지어 인간을 경멸하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도록 가르치라. 그래서 그가 어떠한 계급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든 계급에 속하도록 만들라. 학생 앞에서는 연민과 동정심을 가지고 인류에 대해 말하며, 결코 경멸을 담지 말라. 인간이여, 결코 인간을 모욕하지 말라."
말은 누가 하느냐도 중요하다.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말은 자신을 경멸하는 사람을 구한 트라팔가 광장의 흑인이 외칠 때 진리일 수 있다. 오직 그만이 모든 사람을 향해 "모두의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할 자격이 있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