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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수난받는 존 웨인

이영재 이영재 발행일 2020-07-14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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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이 넘은 '올드팬'들은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가 풍긴 물씬한 '사내 냄새'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평원을 질주하는 마차. 험산 준령을 넘나드는 말 탄 사나이. 그들의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진한 땀방울. 백인 우월주의가 밑바닥에 짙게 깔렸었지만, 그걸 따질 겨를 없이 서부영화의 황금시대는 배우와 관객이 서로 뒤엉키며 그렇게 지나갔다.

서부영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마을을 지키는 보안관과 떠돌이 총잡이와 시시껄렁한 악당들이 등장하는 서부영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선한 눈매를 갖고 있을뿐더러 대체로 말이 없다. 왜 그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도는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지독한 악당이 선량한 마을 사람과 힘없는 농장주를 못살게 굴 때 비로소 총을 잡는다. 총구에 불이 번쩍하면, 악당들은 속절없이 쓰러지고 만다. 권선징악은 물론, 악당은 지옥으로다. 무지렁이인 줄만 알았던 그는 가벼운 미소만 남긴 채 홀연히 떠난다. 홀로된 농장 여주인의 애틋한 눈빛도 외면한 채.

인디언과 제7 기병대가 등장하는 서부영화는 상황이 좀 다르다. 총을 쏘고 괴성을 질러대며 달려드는 인디언들. 위기의 순간이면 트럼펫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기병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인디언들. 그때는 몰랐다. 미국의 역사를 뒤집으면 인디언 멸망사가 된다는 걸. 이런 부류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배우는 단연 존 웨인이었다. 195㎝에 몸무게 102㎏의 건장한 체격, 그야말로 '남성성의 상징'이었다. 서부극의 단역이나 조연에 불과했던 그가 스타 반열에 오른 건 불세출의 감독 존 포드를 만나면서였다. 1939년 '역마차'에 출연하면서 만인의 스타가 됐다.

사후 40여년이 지나 기병대장 존 웨인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생전의 인터뷰, "나는 흑인들이 교육을 받아 책임감을 가지게 될 때까지는 백인들이 여전히 우월하다고 믿는다. 무책임한 사람들에게 리더십과 판단력이 필요한 지위와 권위를 주다니, 그건 안될 말이다"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오렌지카운티 존 웨인 공항의 이름 변경과 동상 철거에 이어 명문 LA USC 영화 대학원 내에 있는 그의 동상마저 곧 철거된다고 한다. 조지 루카스가 졸업한 미국 최고의 영화학과에 있던 동상이라 상징하는 바는 크다. "그때는 그런 시대였어"라는 말이 통용되지 않는 세상이다.



/이영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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