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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우리 사회의 야만과 공정

홍기돈 발행일 2020-09-07 제18면

마스크 다툼·집회참가자 검사 거부
사회적 합의 무시·이성의 부재 탓
감염병 위험 확산 외면 무책임 행태
전공의 파업·일부 종교탄압 운운도
자신만의 공정성, 공공성 우위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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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도처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투쟁은 두 층위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나는 인간이 이성적이지 못한 까닭에 벌어지는 경우다. 마스크 착용을 요청하는 버스 기사에게 기분 나쁘다며 폭행한 여러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지하철에서도 유사한 싸움은 줄을 잇고 있다. 니가 뭔데 나한테 마스크를 하라, 마라 하느냐는 고성과 위협이 한편에 있는가 하면, 이를 무력으로 응징하는 영상도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다. 이는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다. 각각의 개인들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집단으로 뭉쳤다는 사실이 다르기는 하지만 광화문집회로 상징되는 일련의 움직임 또한 이성의 부재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5일 17시 기준으로 집회 관련 확진자는 510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집회 참가자들이 신원을 숨기고, 연락을 끊고, 검사를 거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개천절에 서울 도심에 다시 모이겠다고 한다. 역학조사를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까지 꺼두겠다고 하니, 이러한 수준이라면 집회 관련자들을 반사회 집단이라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코로나에 감염될 위험을 기꺼이 감당하면서 이를 사회 전체로 확산시켜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다른 층위는 나름의 이성에 입각해 있다. 가령 전공의들이 파업을 벌이면서 따져 묻고 있는 것이 공정성인데, 여기에는 그들 나름의 논리가 있다. 자신들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의사 자격을 취득하였으므로 그에 따른 보상은 당연하다는 것. 이는 선발할 의사의 숫자가 늘어난다면 경쟁률이 낮아지니 불공정하며, 그 결과가 자신들이 이미 행사하고 있는 권리의 약화로 이어진다는 데로 이어진다.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학창시절 공부에 매진한 의사"라고 스스로를 규정함으로써 타자의 의사 자격을 문제 삼는 장면은 이와 관련된다.

공정성이 전공의들 논리의 근거를 이룬다면, 의사의 존재 근거라 할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그 논리를 무화시키고 있다. 의정부와 부산에서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환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다.

의사에게도 파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게 그네들의 공정이겠지만, '선서'는 "나는 환자의 건강을 가장 우선적으로 배려하겠다"라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선서'는 한낱 걸레쪽으로 전락하며, 그네들의 공정성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압살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의 인구 1천명당 의사 수가 경제협력기구, OECD 평균의 70%에 불과한 데도 그네들은 충분하다면서 궤변을 늘어놓는다. 지자체 가운데 분만시설이 모자란 지역이 4분의 1, 응급환자가 30분 내 병원에 도착할 수 없는 취약지역도 5분의 2나 되는데, 그네들의 공정성은 이러한 현실 바깥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방식의 공정성 담론은 여기저기서 분출하고 있다. 일부 개신교 교회에서는 정부의 대면예배 금지 조치를 종교 탄압으로 규정하여 반발한다. 예컨대 한국교회연합에서는 "생명과도 같은 예배를 멈춰서는 안 된다"라는 문자메시지를 소속 회원들에게 발송하여 대면예배를 독려했다고 한다. 이러한 태도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소부재하시니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예배를 올리건 모두 다 헤아려서 듣고 계실 터인데, 이들은 그러한 절대자를 믿지 못함일까. 예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지,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이웃에게 곤란에 빠뜨릴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셨다. 그러니 부당함을 호소하는 그네들의 논리에는 하나님도, 예수도 배제되어 버린 형국이라 하겠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 고용에 대한 정규직 직원들과 취업준비생들의 반발도 마찬가지다. 공정성을 잣대로 불평등을 고착화시키고자 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다지 이성적이지 못하며, 그나마 이성적인 인간은 공정성으로 치장하여 자신의 이익을 꾀하기 일쑤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까닭이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어떠한 공정성도 공공성 위에 발 딛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공정성은 사회적 약소자를 보호하는 방편으로 행사되어야 할 것이다.

/홍기돈 가톨릭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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