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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나들목' 인천공항 이야기·(32)]인천공항소방대

공승배 공승배 기자 발행일 2020-09-24 제12면

훈련인가 실제인가… 180초 출동 위한 365일의 피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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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공사 소속 공항소방대가 9월 17일 모형항공기 소방훈련장에서 화재 진압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소방대는 이날 훈련에서 '판터(PANTHER)' 등 항공기 구조소방차 3대와 일반 소방차 3대를 투입해 2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2020.9.23

1억ℓ 안팎의 항공유·수만명 이용 '화재 치명적'
공항공사 소속 소방대 211명 3교대·3곳 분산근무
월 6회이상 불시 출동… 주야 4회 시설순회 점검
각종 특수장비 '고양 저유소 폭발사고' 진압 활약
별도 상황실 운영… 인천소방본부와 핫라인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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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세계 최대 여객기인 에어버스사의 A380 기종은 통상 우리나라에서 미국 등 아메리카 대륙으로 비행할 때 약 20만ℓ의 연료를 채운다. 일반 승용차(50ℓ 기준) 4천대에 가득 주유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항공기 화재가 대형 참사로 이어질 우려가 큰 이유다.

또 12기의 인천국제공항 항공유 저장 탱크에는 1억ℓ 안팎의 기름이 있다. 여객터미널 역시 하루에만 수만 명이 이용하는 데다 각종 음식점까지 입주해 있어 곳곳에 화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 같은 화재 위험으로부터 인천공항을 보호하는 일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소속 공항소방대가 맡고 있다.



9월17일 오후 3시께 찾은 인천공항 제3활주로 인근 모형항공기 소방훈련장에서 공항소방대의 화재 진압 훈련이 실시됐다. 모형항공기는 좌측 엔진은 에어버스사의 A380, 동체와 우측 엔진은 보잉사의 B747, 상부 엔진은 맥도넬 더글라스사의 MD-11 기종을 합쳐 만들어졌다. 다양한 기종의 항공기 사고를 훈련하기 위해서다.

훈련이 시작되자 모형항공기 좌측 엔진에서 5m 높이의 불길이 발생했다. A380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해 기름까지 유출된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불길은 금세 항공기 좌측 날개를 뒤덮었다. 불이 나자 현장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분소B에서 소방대가 먼저 출동했다. 인력 20여명과 특수 장비들은 약 30초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소방대는 오스트리아 로젠바우어사의 '판터(PANTHER)' 차량 등 3대의 항공기 구조소방차와 3대의 소방차를 투입해 좌측 엔진과 동체에 물을 분사하기 시작했다. 영화 '트랜스포머 3'에 '센티넬 프라임' 역할로 등장해 유명세를 탄 판터 차량은 분당 최대 6천ℓ의 물을 분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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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터(PANTHER) 차량. 2020.9.23

주거 지역 등 일반 화재 현장에서 사용하는 소방 펌프 차량은 분당 2천800ℓ 정도의 물을 뿌린다. 판터 차량은 폼(Foam) 형태의 분사제로 A380 기종 전체를 뒤덮는 데도 2분이 채 걸리지 않고, 차량에 설치한 드릴 같은 피어싱 노즐(Piercing nozzle)로 항공기 동체를 뚫어 기내 화재도 진압할 수 있는 특수 소방차다.

항공기와 약 30m 떨어진 곳에서도 열기가 느껴질 정도의 화재였지만 소방대는 동체 정면에서 약 5m 거리를 두고 불을 진압했다. 항공기는 주로 바람이 부는 방향을 마주 보고 비행하기 때문에 화재 진압 활동은 대부분 동체 정면에서 바람을 등지고 진행된다.

신속히 화재를 진압하는 동시에 소방대원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이날 소방대는 약 2분 만에 화재를 완전히 진압했다. 화재 진압 뒤에는 방화복을 입은 구조대가 기내에 들어가 승객 역할의 마네킹을 빼내기 시작했다. 훈련은 30분간 이어졌다. 공항소방대는 의무적으로 1개 팀당 월 1회 이상 이 같은 훈련을 한다.

2003년부터 인천공항에서 근무하고 있는 공항소방대 최재호(45) 반장은 "공항소방대 임무는 건물 화재에 더해 각종 항공기 사고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항공기 사고는 짧은 시간에 큰 피해를 유발하기 때문에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초기 대응6이 공항소방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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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진행된 모형항공기 화재 진압 훈련에서 큰 불이 잡히자 공항소방대 구조대원들이 승객 역할의 마네킹을 구조하기 위해 기내로 진입하고 있다. 2020.9.23

인천공항소방대는 개항 이전인 2000년 7월 약 110명의 인력으로 임무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외부 용역을 통해 이뤄졌지만, 자회사 설립 등을 거쳐 현재는 인천공항공사 소속이다. 국내 공항소방대 중 가장 많은 211명의 인력으로 운영되고 있다. 김포·김해·제주국제공항 소방대 인력은 50~60명 규모다.

3교대 근무 체제인 인천공항소방대는 하루 평균 80여명이 1년 365일 인천공항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모형항공기 화재 훈련뿐 아니라 월 6회 이상 불시 비상 출동훈련을 실시해 비상 상황에 대비한다.

또 주간 2회, 야간 2회 등 하루 4번 공항 시설을 돌며 화재 예방 활동을 벌이고, 용접 등 화기 사용 작업이 진행되는 곳을 점검하기도 한다. 응급 환자 발생에 대응하는 것도 이들의 몫으로, 제1·2여객터미널과 탑승동에 각각 1명의 구급대원이 배치돼 있다.

공항소방대의 주요 임무는 항공기 사고 등 공항 내 비상 상황 발생 시 생명을 구조하는 것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협약을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 공항안전운영기준에 따르면 공항소방대는 공항 내 어디서 사고가 나더라도 3분 안에 현장에 도착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소방대는 3곳에 분산돼 있다. 제1활주로 인근에 소방 본대가 있고, 제1여객터미널 인근에 분소A, 제3활주로 인근에는 분소B가 있다.

3분 내 출동은 훈련 상황도 예외가 아니다. 훈련 도중에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훈련에 투입하지 않은 장비 상당수를 인천공항 중앙에 있는 관제탑 인근으로 옮겨 긴급 상황에 대비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인천공항을 지키는 인천공항소방대는 보유 장비 역시 특별하다. 소방대에는 항공기 구조소방차 8대, 물탱크차 등 일반 소방차 8대, 구급차 3대 등 총 25대의 차량이 있다.

이는 ICAO 협약을 바탕으로 인천공항공사가 수립한 공항운영기준보다 높은 수준이다. 기준에는 3대의 항공기 구조소방차를 보유하게 돼 있다. 1대당 10억원을 넘는 항공기 구조소방차는 화재 진압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국내 소방 분야에서도 인천공항소방대의 장비는 '최고'로 평가받는다.

인천공항 항공기 구조소방차는 2018년 발생한 '고양 저유소 폭발 사고' 진압에도 큰 역할을 했다. 2018년 10월7일 경기 고양시에서 한 외국인이 날린 풍등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불씨가 440만ℓ의 휘발유가 있는 대한송유관공사 저유소로 들어가 폭발로 이어진 사고다.

최고 단계인 '대응 3단계'를 발령한 소방당국의 협조 요청을 받은 인천공항소방대는 항공기 구조소방차 중 미국 오시코시(Oshkosh)사의 고성능 화학차 '스트라이커 3000' 등 차량 2대를 지원했다. 공항소방대 장비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공항을 벗어나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만, 당시에는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지원을 결정했다.

이 차량은 폼 등의 화학 소화제가 실려 있고, 1천500ℓ 용량의 소화제를 물과 섞어 분사할 수 있어 유류 화재 진압에 특화한 장비다. 일반 차와 달리 차량 등록이 되지 않는 까닭에 경찰의 에스코트까지 받으며 사고 현장으로 이동해 화재 진압에 기여했다.

정문호 소방청장은 지난해 현장 점검을 위해 인천공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저유소 화재 진압에 협력한 공항소방대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인천공항 개항 이전까지 국제선 수요를 담당한 김포국제공항에는 1960년 20여명 규모의 구조소방대가 만들어졌다. 1970년대에는 공항 구급차가 공군 중령을 들이받는 일도 있었다.

경향신문은 1971년 4월17일자 기사를 통해 '김포국제공항 비상 훈련에 참가했던 교통부 소속 공항 구급차가 근무 중인 공군부대 참모장을 치었다. 운전자는 무면허인데도 2년 전부터 구급차를 운전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진화 작업이 주 업무인 공항소방대(인원 23명) 대원들은 대부분 구급차 등을 운전해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진화 작업에 차질을 빚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공항소방대는 별도의 상황실을 운영하며 안전을 관리하고 있다. 인천소방본부와도 핫라인을 유지하며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할 수 있다.

상황실은 제1활주로 인근 소방 본대에 있어 이착륙하는 비행기를 눈으로 볼 수 있고 약 10대의 모니터를 통해 공항 시설 내부와 운영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부대 시설에서 화재 경보가 울리면 자동으로 모니터에 위치가 표시돼 상황을 바로 인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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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소방 본대에 있는 공항소방대 상황실. 상황실에서는 이착륙하는 항공기를 눈으로 볼 수 있고 약 10대의 모니터를 통해 공항 내부 시설과 운영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20.9.23

지난해 10월18일에는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미국 LA행 아시아나항공 A380 여객기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관제소로부터 연락을 받은 공항소방대는 분소A에서 즉시 출동했고, 항공기 구조소방차 등 차량 9대를 투입해 화재 발생 4분 만에 불을 진압했다. 승객이 탑승하기 전에 불이 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공항의 소방 대응 능력은 항공사가 노선 취항 전 꼭 확인하는 주요 관심 분야 중 하나다. 비상사태에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가 노선 결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인천공항소방대는 ICAO에서 정한 공항 구조소방등급 중 최상위 등급인 10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국제 기준(1만1천200ℓ/분)보다 약 6배 높은 분당 7만ℓ의 폼 분사율을 갖추는 등 국제 기준보다 높은 수준의 소방력을 지니고 있다.

조승천 인천공항소방대장은 "공항소방대는 단 1건의 비상 상황에도 신속 안전하게 대응하기 위해 항상 최고 수준의 대응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항공기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일부 사람들은 '왜 서둘러 기내에 있는 승객을 구조하지 않느냐'고 묻기도 하는데, 유류가 가득 찬 항공기 특성상 폭발 우려가 크기 때문에 화재가 80% 이상 진압돼야 기내에 진입할 수 있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글/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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