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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나눔 기쁨' 김경호 택시기사·홍계향 할머니

공지영 공지영 기자 발행일 2020-12-23 제14면

시민 덕분에 택시 운전할 수 있어 보답…마음이 편해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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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나눔캠페인 선행' 김경호 택시기사

이왕 하는 거 좀 덜 먹으면 되지 싶어 더 보태
샐러리맨 시절 라디오사연 듣고 생활비 지원
퇴사후 집안사정이 힘들어 한동안 못하기도
능력 닿는대로 여유 되는대로 이발봉사 포부

#'지자체에 유산 기부' 홍계향 할머니

공장일·야탑역 청소·노점장사 안가리고 다해
부잣집 파출부 남은 밥 '수모' 지금도 못 잊어
자식에 영감까지 죽고나니 4층 건물 '미련없이'
집문서 훔쳐갈까 겁났는데 지금은 안심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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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주말 저녁마다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코미디 프로그램 대신 즐겨보던 것은 '사랑의 리퀘스트'였다.

 

내 또래쯤 된 아이가 아픈 엄마와 어렵게 살아가는 이야기, 지적장애를 가진 아빠가 아이들을 키우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사연으로 방송되면 눈물 콧물 흘리며 집 전화를 들고 TV 앞에 서 있었다.

전화 한 통을 할 때마다 2천원을 기부할 수 있었는데, MC들이 '지금 전화주세요'라고 외칠 때마다 전화를 걸고 또 걸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홀린 듯 몇천원의 전화를 하고 나야 왠지 모를 뿌듯함에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었다.

아마도 비슷한 기억들이 있을 테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어릴 때 심심찮게 기부를 실천해왔다. 크리스마스 때 '크리스마스 실'을 사면 결핵 환자를 도울 수 있었고, 가정의 달이 되면 학교에서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은 일이나, 어떤 때는 집에서 쌀 한 봉지씩을 가져와 근처 노인정이나 보육시설에 가져다주는 활동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는 그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내 것을 나누고 돌아설 때 가슴에 남는 풍요로움만 기억에 남을 뿐이다.

이렇게 어린 시절을 추억하면 기부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 것을 이웃에게 나눌 수 있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

그 시절 나눔을 지금도 실천하는 가장 보통의 이웃들이 여기 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지친 연말, 차가워진 구세군 냄비를 따뜻하게 감싸 안은 이웃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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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한 지 10년째 되는 2020년, 100만원이란 기부금을 선뜻 내놓은 김경호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2020.12.22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 수원 택시기사 김경호씨

"아휴, 나 같은 사람이 기삿거리가 되나요?"

인터뷰 요청에 한사코 손사래를 치는 김경호(64)씨는 택시운전사다.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뜻깊은 해이지만, 유독 어렵고 힘든 해이기도 했다. 그래도 김씨는 수원 시민의 발이 돼 온 지난 10년을 조금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었다.

"수원 시민들 덕분에 제가 그래도 10년을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가정도 지키고, 아이들도 잘 키웠잖아요. 그래서 뭔가 보답을 하고 싶었어요."

그는 경기사랑의열매 희망나눔캠페인에 100만원을 기부했다. "원래는 연탄 1천장을 사서 기부할까 고민했는데, 연탄이 한 장에 700원밖에 안 하더라고요. 그럼 70만원 뿐인데, 이왕 하는 거 내가 좀 덜 먹으면 되지 싶어서 100만원을 기부했습니다."

10년을 기념하는 다른 것들도 많았을 텐데, 어려운 이 시기에 나눔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조심스레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택시운전사로 일하기 전 23년간 삼성전자를 다닌 샐러리맨이었다.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기억에 남는 추억은 '나눔'이었다.

인터뷰 공감 김경호 씨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한 지 10년째 되는 2020년, 100만원이란 기부금을 선뜻 내놓은 김경호씨. 2020.12.22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회사에서 진행한 봉사활동이지만, 예전엔 수해가 많이 나니까 해마다 수해지역 복구도 나섰고 소년소녀가장 돕는 활동도 꾸준히 했어요. 또 이상하게 소비자 상담이나 서비스센터 같은 부서에서 많이 일했는데, 소비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현장에 가보면 소외된 가정들을 보게 돼요. 그럴 땐 괜히 마음이 안 좋아서 회삿돈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보상해주고 싶어 상사 핀잔 들어가며 더해주곤 했어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운전 중 라디오 사연을 듣고 길가에 차를 댄 후 펑펑 울었던 일이다.

"엄마가 교통사고가 나서 전신불구가 됐고 6살, 2살 아이들만 남았다는 사연이었어요. 아빠는 엄마 사고 이후 행방불명이 됐고. 그래서 이 엄마가 손가락에 사인펜을 껴서 며칠동안 편지를 써 방송국에 보낸 거죠.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왜냐면 그때 우리 큰 아이가 6살이었거든요."

그는 월급을 쪼개 라디오 사연의 가족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탰다. "당시는 나도 사원 시절이라 많이는 못 보내서 그게 늘 마음에 걸렸어요. 아이들 방학 때는 그 가족을 수원으로 초대해 에버랜드도 같이 가고 그랬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연락이 끊겼어요. 지금도 그 아이들이 잘 컸나 보고 싶어요."

그때 끝까지 돕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린다는 김씨는 회사를 퇴직한 후 집안 사정이 힘들어 한동안 기부를 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먹고 살려고 택시를 시작했는데, 벌이가 처음부터 좋진 않잖아요. 그래도 이제 아이들도 다 자기 삶을 꾸려가고, 조금 용돈도 쓸 수 있을 정도로 저축도 하니까 다시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0만원 기부를 시작으로 그는 다시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꼭 얼마씩 해야지 정한 건 아니에요. 능력 닿는 대로, 여유 되는 대로 진짜 기부를 하고 싶어요. 또 손재주가 있는 편인데, 이발도 배워서 꼭 이발 봉사활동도 가보고 싶고. 내년 나눔계획을 뭘 할까 고민하는 게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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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가 찾아온 마냥 취재진을 반갑게 맞은 홍계향 할머니가 쑥스러워하며 유산을 기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2020.12.22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성남 홍계향 할머니

"마음이 편해.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그게 나누는 기쁨이지."

홍계향 할머니는 올해 여든여섯이다. 코로나19로 직접 만나는 일을 꺼릴까 걱정했는데, 할머니는 버선발로 마중 나와 우리를 맞았다. 연신 기분이 좋다며 미리 준비해둔 빨간색 방석도 내줬다.

"안 해본 일이 없지요. 공장도 다니고, 파출부도 나가고, 빌딩계단청소도 하고 야탑 지하철역 청소도 했어요. 노점 장사도 하고, 돈 벌 수 있는 일이면 그냥 안 가리고 다 했어요. 말 못할 일도 많이 겪었지. 지금도 잊지 못하는 게 어느 부잣집에 파출부 일을 하러 갔는데, 자기 다섯 식구 남은 밥 다섯 덩이를 모아서 밥을 주더라고…. 내가 없이 살지만, 참 그때 정말 기분이 그랬어. 밥을 먹지도 않고 그 집을 나왔지."

젊은 시절부터 홍 할머니는 쉬지 않고 일했다. 홍 할머니의 지난 역사를 짧게나마 듣고 있자니, 그의 기부가 주는 울림이 크다.

할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4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성남시에 기부했다. 유산기부다. "하나 있던 자식도 하늘로 떠나고, 영감까지 죽고 나니 사람들이 묻더라고. 이 집을 어떻게 할거냐고. 나는 배우지도 못했고 그저 열심히 일하는 것밖엔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그저 먹고 살 수 있게 해준 성남시에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집을 기증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2, 3년 전인가, 도둑이 들었는데, 그때 정말 기증하길 잘했다 생각했어. 기증하기 전엔 외출할 때 누가 집문서 가져갈까봐 겁나고 그랬는데, 지금은 안심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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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을 기부한 홍계향 할머니. 2020.12.22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통큰 기부 이후에 할머니는 나눔의 기쁨을 만끽하는 재미에 푹 빠져 살고 있다.

2015년부터 지금까지 연말마다 진행하는 성남 사랑의 온도탑 모금활동에 꾸준히 기부한 일을 묻자 "월세 받은 돈 모았다가 내는 거지, 큰돈도 아니고 말할 것도 못 돼"라고 쑥스러워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집 앞 성남동복지회관이 문을 닫아 늘 해오던 배식봉사를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동네에 파지 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면 마음이 쓰여 점심 먹으려고 아껴둔 돈도 내주곤 한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밖에서 일하느라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 먹을텐데…. 그래도 나는 2천원 주면 복지관에서 밥 먹을 수 있어요. 괜찮아."

또 새해가 되면 빳빳한 새 돈을 은행서 뽑아 동네 아이들 세뱃돈을 챙기는 일도 할머니의 기쁨이다.

"꼬마들이 지나가면서 아는 척 해주고 인사도 해주고 하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아. 기부하기 전엔 몰랐는데, 기부하고 나니 아무 걱정이 없고 마음이 더 편안해졌어요. 그리고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인데 주변 사람들이 '저 할머니 좋은 사람'이라고 좋은 말 많이 해주니 그저 감사하기만 해요."

인터뷰를 마치고 마주 본 할머니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 진짜 어른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김금보·김도우기자 artomat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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