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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꽃]지상에 없는 잠

권성훈 발행일 2021-01-12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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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꽃나무 가지에서 한숨 잤네 // 외로울 필요가 있었네 // 우주에 가득 찬비를 맞으며 // 꽃잎 옆에서 자고 깨보니 // 흰 손수건이 젖어 있었네 // 지상에서 없어진 한 꽃이 되어 있었네 // 한 장의 나뭇잎을 서로 찢으며 // 지상의 입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네 // 저물녘 마른 껍질 같아서 들을 수 없는 말 // 나무 위로 올라오지 못한 꽃들은 // 짐승 냄새를 풍겼네 // 내가 보았던 모든 것과 닿지 않는 침대 // 세상에 닿지 않는 꽃가지가 좋았네 // 하늘을 데려다가 허공의 아랫도리를 덮었네 // 어젯밤 꽃나무에서 꽃가지를 베고 잤네 // 세상과 닿지 않을 필요가 있었네 // 지상에 없는 꽃잎으로 잤네

최문자(1943~)


권성훈교수교체사진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내가 나로 있게 하는 것은 자신만의 특이성에서 오는 것 같지만 차별성에서 비롯된다. 이 차별성은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타자로부터 생겨나는 것으로 그것은 각자의 다름에 있는 것. 따라서 나와 너는 고유한 너와 나의 집합체로서 공동체라는 관계망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꽃으로 말하자면 서로의 '꽃잎'을 매달고 있는 '우리'라는 '꽃나무'인 것.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 갇혀 오히려 자신의 민낯을 볼 수 없다는 것인데 때로는 그것을 알기 위해 '외로울 필요'가 있다. 요컨대 꿈을 꾸듯이 자신을 벗어나 '지상에서 없어진 한 꽃'으로 지상에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 '한 장의 나뭇잎을 서로 찢으며 지상의 입들로 짐승처럼 싸우고' 있지 않던가. '세상에 닿지 않는 꽃가지가' 있다면 그러한 꽃은 '지상에 없는 꽃잎'으로 꿈을 꾸는 꽃잎인 것. 여기서 '세상과 닿지 않을 필요가' 있는 사람을 말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꿈을 꾸는 '시인'으로서 바로 그 존재 이유를 물을 수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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