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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홍정표 홍정표 논설위원 발행일 2021-03-23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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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95㎞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은 체력뿐 아니라 강인한 정신이 겸비돼야 한다. 레이스 내내 선수들은 완주와 포기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테네 병사가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달려온 거리가 더 길었다면 올림픽 종목이 될 수 없었을 것이란 우스개가 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만으로 박수를 받는 유일한 스포츠 종목이다.

마라톤은 우리 민족에도 특별하다. 나라 잃은 암울한 시기 손기정은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 민족 영웅이 됐다. 2시간 30분대를 깬 세계신기록이었으나 일장기를 단 비운의 주인공이다. 서윤복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25분 3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동양인으로서 처음인데, 손기정이 그의 감독이었다.

이후 침체기를 겪은 한국 마라톤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가 우승하면서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어 이봉주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며 마라톤 강국의 계보를 이었다. 지난 2000년 그가 세운 2시간 7분 20초의 한국신기록은 21년째 난공불락이다.

이봉주는 평발에 짝발(왼발 253.9㎜, 오른발 249.5㎜)이란 치명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마흔 살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165㎝ 단신에 왜소한 몸체, 친근한 인상으로 '국민 마라토너'로 사랑받았다. IMF 사태 때 박세리와 함께 희망과 용기가 됐다. 은퇴 이후엔 방송인으로 변신,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존재를 알렸다.



국민 마라토너가 예기치 않은 시련을 맞았다. 1년 전부터 원인 불명의 근육 긴장 이상증을 앓고 있는 근황이 전해지면서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병명은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근육 긴장 이상증'이라고 한다. 의지와 무관하게 근육이 꼬이거나 목이 뒤틀리면서 돌아가는 등 통증을 동반한 근육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얼마 전 방송에서 그의 불편한 거동을 본 시청자들은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고향인 충남 천안에서는 '이봉주 선수 도와주기 운동'에 나섰다. 시와 체육회가 후원회를 결성하고 그의 이름을 건 전국 마라톤대회를 열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병마와 싸워 이기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평소에도 '진정한 승리는 1등이 아니라 완주하는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 응원이 용기가 돼 그가 팬들과 함께 힘차게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

/홍정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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