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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전국이 '투기 먹잇감'인 나라

홍정표 홍정표 논설위원 발행일 2021-03-24 제19면

공직자들의 지분투자는 '비밀의 동지' 전제
그래서 LH사태 '공공·공정 훼손' 중대범죄
광명·시흥 이어 '용인 SK예정지'도 투기 정황
역대정부 알고도 방치·이용 현재도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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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표 논설위원
사촌이라도 땅은 함께 사는 게 아니라고 한다. 훗날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절친끼리 토지를 사들였다가 원수지간이 되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함께 부자 되자며 의기투합했으나 시일이 지나면 이해가 갈리게 된다. 여윳돈은 장기투자도 무방하나, 빌린 자금은 이자와 원금 상환 부담에 사정이 급해진다. 나대지로 팔자는 쪽과 개발행위를 해 가치를 높이자는 주장이 맞선다. 누군가와 함께 땅을 산다는 것은 '분쟁의 지뢰밭'을 공유하는 것에 다름없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이 토지를 공동매입하고 지분을 쪼갠 건 어지간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눈을 피해야 하는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자는 비밀유지가 전제돼야 하고, 공평하게 이익을 나눌 수 있다는 공동체 의식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이미 드러난 대로 함께 사들인 토지를 1천㎡ 크기로 쪼개기를 한 직원들은 오랜 세월 고락을 함께한 동지들이다.

사태 초기,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LH 직원들의 광명·시흥지구 투기를 두고 '몰랐을 수 있다, 얻어걸린 경우가 아닌가 싶다'고 해 공분을 샀다. 그러니까 전문가들도 인정한 수법을 '소의 뒷걸음질'에 빗댄 거다. 야당은 물론 여권도 '내 편 감싸기에 정무 감각을 잃은 어이없는 발언'이라 혹평했다. '국민 얼굴에 침을 뱉었다'는 말까지 들었는데, 따지고 보면 그의 말이 틀린 소리만은 아닌 듯하다.

LH 사태를 조사 중인 정부 합동조사단이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민변과 참여연대가 폭로한 투기 의심 직원 14명 외에 수십 명이 추가로 적발됐다고 한다. 3기 신도시에 대한 투기 의심 사례를 보면 광명·시흥이 전체의 70%를 넘는 압도적 점유율을 보인다. 가장 늦게 지정된 막내 동네에 '지분 쪼개기와 희귀목 심기' 고수들이 몰려든 까닭은 뭔가.



광명·시흥 17.4㎢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됐다. 분당신도시와 맞먹는 크기에 서울과 인접해 기대를 모았으나 진척되지 않았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 지구 해제됐고, 특별관리구역으로 재지정됐다. 2025년까지 환지방식으로 개발하지 않으면 2010년 이전 상태로 되돌려진다. 공공이든 민간이든 개발이 될 땅이다.

턱없이 낮은 지가(地價)도 매력적이다. 10년 넘게 그린벨트보다 더한 족쇄가 채워지면서 헐값이 됐고, 인근 지역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평당 가격이 200만원을 밑돌아 광명역세권과 수십 배 차이가 난다. 원주민들은 부동산 열풍이 분 2018년부터 외지인들의 방문과 거래가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신도시도 좋고, 아니어도 나쁠 게 없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2월 용인 원삼 일원 442만㎡가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부지라 발표했다. 열흘 뒤 경인일보는 2년 전부터 클러스터 부지 경계가 선명한 도면이 유출돼 투기세력 참고서가 됐다고 보도했다. 지역 토지거래 건수가 2017년과 2018년 급증한 사실도 전했다. 부지 선정은 물론 도면이 사전 유출되고 투기꾼들이 사재기에 나선 사실을 추적 보도한 것이다.

지자체는 조사도, 수사 의뢰도 하지 않았다. 경찰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진(强震) 발생 전, 이상 행동을 하는 동물이 많다. 쥐는 한 방향으로 떼 지어 이동하고, 새들은 둥지를 박차고 날아오른다. 자연이 경고하는 전조 증상이다. 광명·시흥 이전에도 1·2·3기 신도시마다 대규모 투기 정황은 차고도 넘쳤다. 역대 정부는 필요하면 조사하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뭉갰다. '재수 없어도 안 걸린다'는 경험치가 쌓여 전국이 투기 먹잇감이 됐다.

LH 사태는 공공의 기능과 공정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중대범죄행위다. 토지·주택을 마음껏 주무르는 무소불위의 권한은 유혹을 견뎌내기 힘들다. 수십 년 응집된 부조리가 폭발했는데, 정부·여당은 유불리를 먼저 따져보자는 태도다. 검찰과 감사원의 조사·수사를 두고 정치권이 다른 소리를 한다. 정부 고위인사가 재임 중 개집을 짓겠다며 산단 예정지를 사들였다. 그런데도 전 여당 대표는 '위는 맑아진다'며 아랫물 탓을 한다. 거물은 숨고, 잔챙이만 몇 패가망신할 처지다. 머리를 조아린 정부·여당에 국민이 외려 '발본색원해달라' 애원할 판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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