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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초저예산 '인천스텔라' 만든 백승기 영화감독

김성호 김성호 기자 발행일 2021-04-07 제14면

"충무로 아닌 인천의 화도진로·홍예문로 시네마 펼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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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5일 전국 100여개 극장에서 일제히 개봉한 '메이드 인 인천' SF영화인 로맨틱 우주 활극 '인천스텔라'를 연출한 백승기 감독을 최근 인천 중구청 인근에 있는 카페 낙타사막에서 만났다. 백 감독은 "임종하는 순간까지 카메라와 노트북만 곁에 있다면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백승기라는 장르의 영화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나의 목표"라고 말했다.

'인천스텔라' 등 4편 제작비 1억도 안돼… 기간제 교사 일하며 충당
영사실에서 본 '황비홍2' 잊을 수 없어 '주성치 비디오' 닳도록 시청
'인천 내항' 단골 배경… 희로애락 함께한 풍경 관객과 나누고 싶어
각자 삶의 터전이 '최고의 할리우드' 흥행 도전·다작 감독 사이 '고민'


2014년 영화 '숫호구' 500만원, 2016년 '시발, 놈: 인류의 시작' 2천만원, 2019년 '오늘도 평화로운' 1천만원, 최근 개봉한 인천스텔라 6천만원 등. 백승기(39) 감독이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찍은 초저예산 영화들의 제작비다.

7년 동안 4개의 장편에 투입된 제작비를 다 합쳐도 1억원이 넘지 않는다.

백승기 감독이, 맞대결 대신 '자매품 영화'라고 홍보하는 전략을 택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의 제작비 1억6천500만 달러(1천886억원)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만큼 터무니없이 적다. 제작비를 벌기 위해 기간제 미술교사로 일하면서도 정말 고집스럽게 영화를 찍어온 백승기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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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국 100여개 상영관에서 일제히 개봉한 로맨틱 우주 활극 '인천스텔라'를 만든 백 감독을 인천 중구청 인근의 카페 '낙타사막'에서 만났다.

그는 "웰메이드(well-made)를 해야 하는데 '왜?메이드'를 하고 있다"면서 "지금 그 고집이 사람을 잡고 있다"고 웃었다. '여유로운 창작 환경도 아닌 상황에서도 왜 계속 영화를 찍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힘든 점도 많지만, 기쁨이 크기 때문에 (영화를) 계속 찍을 수밖에 없다. '영화' 그 자체가 너무 좋다"고 답했다.

그는 언제부터 영화에 빠지게 됐을까? 그가 극장에서 처음 접한 영화는 초등학교 시절에 본 '황비홍2'였다고 한다. 그것도 객석이 아닌 영사실에서였다. 지금은 사라진 화평동 인천극장 영사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네 형을 따라 나섰다 그는 그때 평생 잊지 못할 신세계를 경험했단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인류가 처음 경험했을 때의 그 충격, 느낌이 그때의 제가 받은 그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그때 영사기에서 쏜 빛이 스크린에 펼쳐지던 그 모습, 영화라는 그 자체가 신기했어요."

이후로 극장은 자주 가지 못해도 '비디오'로 영화를 즐겼다. 동네 친구들과 배우 주성치의 영화를 비디오테이프가 닳도록 봤다. 어제 본 영화를 오늘 보며 또 웃었다. 이후 인천예고 1학년에 다니던 때 만난 영화 '타이타닉'은 정말 경이로웠고 충격 그 자체였다.

"IMF 이후 '금 모으기'가 한창이었어요. 저 영화를 보면 외화가 그대로 해외로 빠져나간다고 해서 보지 말라던 영화였죠. 너무 궁금해서 그 영화를 보러 갔어요.

좋아하던 여학생과 볼 생각으로 배다리에 있던 피카디리 극장에서 영화표 두 장을 예매했죠. 그런데 여학생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자리 두 개를 차지하고 혼자 앉아서 봤죠. 옆 사람이 아닌 영화에만 집중했어요.

그야말로 경이롭다는 말 밖에….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는 거대한 배, 연기라고 믿기 힘든 사람들의 모습,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어요. 정말 '영화는 인간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창작 활동'이라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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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감독의 영화는 인천에 없는 곳을 빼고는 모두 인천에서 촬영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저예산으로 만들다 보니 자신이 잘 아는 동네의 인프라를 활용했다.

"어차피 우리는 잘 못 만든다. 가진 것도 없고 기술도 없고, 인맥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어차피 우리가 못 만들 바에는 차라리 세상에서 제일 못 만들자. 그만큼 부담을 갖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작 환경 안에서 우리가 뽑아낼 수 있는 최대한 매력적인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 목표였어요.

동네를 기반으로 많은 단편을 만들어 냈고, 급기야 저예산으로 장편도 만들고 운이 좋게도 극장 개봉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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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을 제외하곤 마치 서명처럼 그의 영화마다 꼭 등장하는 인천의 모습이 있다.

자유공원 광장에서 바라본 인천 내항의 모습이 그렇다. 배우가 자유공원 광장 난간 앞에 서서 인천항을 바라보는 모습이 거의 모든 영화에 나온다. 또 공자상 옆 계단에 앉아서 배우들이 인천항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 또 홍예문 위를 걷는 장면 등도 그가 꼭 담아내는 그림이다.

백 감독은 "제가 생각하는 인천의 아름다운 장소인데, 인천이 이탈리아 나폴리 못지 않은 미항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릴 적엔 잘 몰랐지만, 작품으로 재해석하면서 더 좋아진 장소들인데, 제가 힘들 때나 기쁠 때 바라본 풍경들이다. 그 감성을 관객과 같이 나누고 싶어 꼭 등장시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각자 사는 삶의 터전이 최고의 '할리우드'라고 강조했다.

"영화판을 이야기할 때 아직도 '할리우드로 진출해야지', 혹은 '충무로로 가야지'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인천에서 영화 만드는 백승기도 충무로로 보내는 기자분들도 계시고요.

하지만 지금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창작집단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충무로가 아니라 인천의 화도진로, 홍예문로 정도가 되겠죠. 저는 화도진로 시네마, 홍예문로 시네마를 펼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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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은 매번 '완성' 그 자체를 목표로 영화를 찍고 있지만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 있음을 깨닫는다고 했다. 그래서 여러 고민이 있다.

"상업적 감독으로서의 성취감도 이루고 싶어요. 현재 상업적인 성공에 주력하거나, 아예 포기하고 다음 세대 관객을 위해 '한국에 저예산으로 수십 편의 다작을 남긴 이런 감독이 있었다'는 식의 외롭고 쓸쓸한 목표에 도전을 해야 할지 갈림길에 있는 것 같아요.

저뿐 아니라 같이 참여해주시는 분들에게도 언제까지 '그저 즐겨 주세요. 돈 없이 합니다' 이럴 수는 없겠더라고요. '의미 있었어'라고 제 입으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말은 나중에 사람들이 평가해주는 것이지 저 스스로 입에 담을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감독으로서의 목표를 물었다. 그는 "임종 직전까지 그 순간에도 카메라와 노트북이 놓여 있다면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백승기라는 장르의 영화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백승기 감독은?

1982년 출생. 주변의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구축해 첫 장편영화 '숫호구'를 시작으로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오늘도 평화로운', '인천스텔라'까지 연출한 4편의 작품이 모두 부천영화제에 초대되면서 부천의 총아로 불리고 있다.

▲ 2012 '숫호구' 장편 Super Virgin (feature) 제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후지필름 이터나상, 제27회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 초청

▲ 2016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장편 Super Origin (feature) 제1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

▲ 2019 '오늘도 평화로운' 장편 Super Margin (feature)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

▲ 2020 '인천스텔라' 장편 Super Nova (feature)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장편배급지원상, 제7회 춘천영화제 춘천의 시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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