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와 투자 사이… 전국민 열광시킨 '내 집 마련 확률게임'
가히 '청약 대전쟁' 시대라고 할 만하다. 지난 5월 동탄의 500세대 아파트 청약에 28만명(1순위 기준)이 몰렸다. 올해 하반기까지 3만2천호를 모집하는 3기 신도시 사전청약 1차분(7월)에는 4천333호 모집에 9만3천798명이 몰려 경쟁률이 21.6대 1을 기록했다.
전국민 주택 보급률이 80%가 되지 않던 시절 시작한 주택 청약은 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지금도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기본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자격을 주되 '운이 좋으면 당첨'이라는 요소는 청약 제도 시행 반세기가 다 되도록 여전하다.
수도권 3기 신도시 사전 청약이 시작된 지난달 28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인천지역본부 내 마련된 인천 계양 신도시 사전 청약 상담소에 시민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신도시 사전청약 접수처에서 시설 관계자가 신도시 위치를 확인하고 있다. 2021.7.28 /연합뉴스
1977년 '국민주택청약부금' 제도 모태
이전까지 추첨·선착순… 투기꾼 기승
계약금·중도금 지급 통해 건설비 충당
건설사 뛰어들어 주택보급 가속 토대
종전의 청약 제도가 대기업 종사자나 맞벌이 부부보다는 소득이 크지 않은 중소기업 종사자를 우대해야 한다는 흐름에 편승해 있었다면, 이번 변화는 이른바 '벤츠 끄는 무주택자'와 같이 당장의 소득은 없으나 자산은 많은 계층을 배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1990년대 들어 주택보급률이 상승하면서 정부도 규제 완화로 정책 방향을 선회한다. 1988년 83만명이었던 주택청약저축·예금 가입자는 1990년 200만명에 육박했다.
청약 대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경기도에 1기 신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한다. 서울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청약은 1기 신도시를 계기로 경기도에서도 보편 일상이 됐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을 강타한 IMF 사태는 청약 제도 규제 완화로 이어진다. 건설 경기를 진작하기 위해 청약 자격을 확대하고 2주택자도 1순위(민영주택)에 포함시켰다. 청약통장·분양권·주택 전매제한도 폐지됐다. 2000년대 들어 경제가 회복되자 규제 완화의 후폭풍이 불어닥친다.
2002년 투기과열지구 지정제가 도입됐고, 민영아파트도 장기 무주택 세대주에 우선 공급, 분양권 전매 제한 등의 조치가 잇따랐다. 2004년에는 무주택 세대주에 공급하는 아파트 물량을 크게 늘렸고, 전매 제한 기간도 연장했다.3기 신도시 사전청약 접수처에서 시설 관계자가 방문객을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2021.7.28 /연합뉴스
1기 신도시 계기로 경기도 '청약' 보편화
IMF 사태로 규제완화 2000년대 후폭풍도
2007년부터는 무주택기간 등 '가점제'로
2009년 3개로 나눠진 '통장' 하나로 통합
청약제도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된 건, 지난 2007년의 일이다. 제도 시행 이후 30년 동안 추첨을 원리로 운영해왔지만, 2007년부턴 각종 자격 요건의 점수를 합산한 청약 가점제로 제도를 수정한다. 무주택기간·부양가족수·저축가입기간 등 지금 청약 점수 계산에 동원되는 항목들이 이때 정착된다.
이후 2009년엔 공공주택(청약저축)과 민영주택(청약예금·청약부금)으로 나눠진 청약통장을 '청약종합저축'으로 통합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의 핵심은 신혼부부 우대다. 전체 물량의 40% 가량을 신혼부부를 위해 배정한 것이다.
저출산 시대 극복이라는 이 시대의 과제에 맞게, 무주택 기혼 부부보다는 신혼부부 및 예비 신혼부부에게 더 많은 물량을 배정했고 신혼부부 중에서도 자녀를 가졌거나 가질 예정인 사람을 우대한다는 게 특징이다.
이런 제도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주택 정책을 저출산 대책과 연계시킨다는 데 대한 반발이 심했고, 정부는 여러 의견을 수렴해 1인 가구와 무자녀 신혼부부에게도 일정 비율의 주택을 추첨제로 공급하기로 했다.
또 맞벌이로 소득 기준을 초과한 신혼부부에게도 청약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자산 기준을 적용해 자산이 많은 청약자는 배제한다.
2020년까지 청약 당첨의 절대적 기준으로 꼽힌 '자녀 수'가 완화된 것이다. 이처럼 청약은 그 시대의 상황과 무주택자의 요구에 맞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 왔다. 파주 운정신도시 일대 모습. /연합뉴스
하반기 '3기 사전청약' 핵심은 신혼부부
자녀우대 반발에 일부 1인가구 등 공급
시대 상황 맞춰 '자녀수' 절대기준 변화
'냉·온탕' 경기따라 제도 점점 복잡해져
반세기 동안 수정 과정을 거치며 청약은 복잡한 제도가 돼 버렸다. 청약통장 가입기간과 금액, 자녀 수, 소득, 자산을 모두 계산해야 하고 청약 대상 지역이 거주자에게만 청약 자격을 부여하는 곳인지 따져야 한다.
이런 계산을 거쳐 가점을 합산해 만점에 도달해도 청약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일례로, 3기 신도시 신혼희망타운은 1차 모집 대상지(인천계양·남양주진접1·성남복정1·의왕청계2·위례)에서 모두 만점자(9점)가 나왔다. 가점 만점을 달성한 이들은 결국 추첨을 통해 당첨자와 낙첨자를 가렸다.
청약 제도가 늘 뜨거웠던 건 아니다. 2006년 청약 돌풍의 핵이었던 성남 판교에선 682대 1, 2007년 인천 송도에선 오피스텔 청약에 4천855대 1의 기록적인 경쟁률도 나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 이후로 한동안 수도권 지역에서도 1순위 미달이 연이어 나타나기도 했다.
청약은 부동산 경기가 상승할 것이란 인식이 지배적일 때는 급격히 달아올랐고, 입주 시점의 매매가가 분양가보다 낮을 거라는 인식이 있는 경기 하강 국면에서 급속히 냉각됐다.
온탕(1970년대~1990년대)과 냉탕(1990년대 후반), 다시 온탕(2000년대 초반)과 냉탕(2000년대 후반)을 거쳐 현재 청약 시장은 펄펄 끓는 온천과 같다. 과거에 비춰 볼 때 청약 열기도 언젠가 식고 다시 그 시대의 요구에 맞춰 변화할 것이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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