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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불친절한 법원은 무죄일까] 누구의 편익인가… 적극행정이 필요한 법원

경인일보 발행일 2021-11-30 제3면

국고귀속 공탁금 매년 1천억… 소액사건은 판결 이유도 모른다

유쾌한 일로 법원을 찾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원치 않는 송사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법원을 방문하는 국민들이 대다수다. 재판부가 제아무리 공정한 판결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결과를 받아본 절반은 법원의 판단에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승소의 기쁨과 패소의 아쉬움이 공존하는 곳이 법원이다. 재판 결과에 따른 국민들의 불만은 법원도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국민들이 재판 과정 혹은 사법 절차에서 불편함을 겪진 않았는지 살피고,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건 법원의 역할이다. 가뜩이나 좋지 않은 일로 법원을 찾은 국민들이 법원의 불친절까지 감수하며 노심초사할 필요는 없다.

법원이 관심만 가진다면 사법행정을 경험하는 국민들의 편의로 이어질 수 있는 일들은 이미 산적해 있다. 법원에도 적극행정이 필요한 이유다.

매년 1천억원씩 국고로 귀속되는 공탁금
법원에는 공탁이라는 제도가 있다. 법원은 이 제도를 '공탁자가 법령에 규정된 원인에 따라 금전·유가증권·그 밖의 물품을 국가기관인 공탁소에 맡기고, 피공탁자 등 일정한 자가 공탁물을 수령함으로써 법령에서 정한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빚을 진 채무자가 돈을 갚으려고 할 때, 채권자가 의도적으로 돈을 받지 않거나 채권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 채무자는 해당 금액을 법원에 공탁함으로써 채무를 대신할 수 있다.

 

찾아가지 않은 공탁금, 15년뒤 국가소유
작년 수원지법 88억·인천지법 49억 달해
국감서 "우편안내·신문광고 그쳐선 안돼"

이처럼 공탁은 돈과 관련한 사인 간의 갈등을 줄이는 걸 돕는다는 점에서 공익적인 성격의 제도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 가지 흠결이 있다. 15년이 지난 공탁 사건의 공탁금은 국고로 귀속되는데, 주인을 찾지 못하고 국고로 귀속된 돈이 연간 1천억원 이상이라는 것이다.

경인지역에 국한하면 지난해 수원지방법원과 의정부지방법원에서 국고 귀속된 공탁금 총액은 각각 88억여원과 52억여원이다. 인천지방법원은 49억여원이 국고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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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탁금의 국고 귀속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고로 들어가는 공탁금의 액수가 매년 늘어나면서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려면 법원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영배(민·서울성북갑) 의원은 "공탁금 주인찾기가 '선택적'인 안내문의 우편 송달, 신문광고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원도 돈을 찾아가지 않는 당사자에게 안내문을 발송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법원 관계자는 "공탁금 출급·회수청구 안내문의 송달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송달 방법 변경 등 안내문 발송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내년부터 시행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의 편익일까
소송에서 졌는데, 패소한 이유를 알 수 없다면 당사자는 해당 판결을 납득할 수 있을까. 현행법상 소가 3천만원 이하 민사사건은 소액사건심판법이 정한 별도 절차에 따라 재판이 진행된다.

사건 자체가 크지 않으니 재판 과정을 간소화해 신속하게 결론을 내겠다는 것이다. 당사자 입장에서도 법의 빠른 판단을 구하는 쪽이 낫기 때문에 법원과 소송 당사자 모두 '윈윈'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소액사건심판법은 제11조의2에 '판결서에는 이유를 기재하지 아니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대부분의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판결 이유를 따로 기재하지 않고 있다. 소송 당사자들은 판결 이유를 분석해서 항소를 하든 대응 방법을 검토해야 하는데, 소송에서 왜 이겼고, 졌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물론 전체 민사사건 중 70%가량이 소액사건 재판으로 진행되는 탓에 소액사건 판사 개인이 짊어지는 과도한 업무량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판결 이유 등을 세세하게 쓰려면 신속한 소송이 불가능하다는 우려도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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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탁금의 국고 귀속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국고로 들어가는 공탁금의 액수가 매년 늘어나면서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려면 법원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사진은 법원 입구 모습. 2021.11.29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왜 졌는지도 모르는 소송, 대응 어려워져
구술설명·사무배분 등 재판의 질 높여야
재판과정 '조서 의존' 법정녹음 필요성도

다만 판결 이유를 생략하는 대신 선고 시 판결 요지를 구술로 설명하도록 하는 방법을 활용하거나, 적정한 사무 배분으로 소액사건 재판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여러 개선 의견에는 법원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소액사건 재판 당사자들은 소액사건심판법의 존재 이유가 법원의 편익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원의 법정녹음도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법정에서 오가는 수많은 대화는 조서로 남긴다. 이 조서는 재판 과정을 요약해 기록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조서에만 의존하는 재판은 내용의 정확성이나 과정의 투명성 측면에서 불완전하다는 비판을 늘 받아왔다.

법원은 앞선 2015년부터 전국 법원에서 법정녹음 제도를 본격 시행했으나 수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병원 수술실 안에도 곧 CCTV가 설치될 만큼 온 영역에서 절차의 투명성을 강조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다.

정작 법원 밖에선 이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회 최기상(민·서울금천구) 의원 등은 소액사건에도 판결 이유를 기재하도록 한 소액사건심판법과 재판의 녹음·녹화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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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손성배, 배재흥 기자
사진 : 김금보·김도우 기자
편집 : 김동철, 장주석 차장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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