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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대한민국은 양반들만의 나라?"

김구용국 발행일 2022-02-14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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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문학박사
어느덧 대한민국은 양반들만의 나라가 된 듯이 보인다. 적어도 1900년 이전까지 반상(班常)의 신분적 차이가 존재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랍기만 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오천 년 역사 가운데 사회구성원 모두가 성씨를 갖게 된 것은 겨우 100년 전의 일이니 말이다.

역사적으로 신라나 발해도 귀족층 외에는 성씨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였다고 하니 자못 궁금증이 더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고관대작을 지낸 명문가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이는 고려 문종(1055년) 때로 거슬러 간다. 이 당시도 성씨가 없는 귀족층들이 많아 성씨 사용을 적극 추진하였다고 한다. 그것이 봉미제도(封彌制度)로 과거시험의 답안지에 응시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본관은 물론 사조(四祖)의 이름을 적고 이것을 접어 봉하도록 한 것이 성씨의 유래이며 양반의 유래다. 상황이 이러하니 성씨가 없던 귀족들은 다투어 중국의 성씨를 빌어 족보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또한 오래된 족보일수록 집안의 권위가 높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벼슬을 하려는 사람이면 족보가 있어야만 했다. 즉 족보는 벼슬을 하기 위한 필수적 자격요건이었다. 한국식 족보는 그렇게 탄생하였다. 이후 갑오개혁(1894년)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성씨를 갖게 되었지만, 실질적으로 전 국민이 성씨를 갖고 족보를 갖게 된 것은 1909년 일제식 민적법(民籍法)의 시행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었다. 이로 짐작하건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양반이 된 것은 원하는 성씨와 본관을 나누어준 민적법의 시행으로 가능하였던 것이었다. 


지조·결기있는 대선후보 당선 바람
표만 구애 아첨하는 자 절대로 안돼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오늘날 대한민국은 국내로 유입되는 이주민으로 창성창본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다. 1985년 270여 개의 성씨가 2015년 5천582개의 성씨가 되었다. 한 예가 청양 오씨로 케냐 출신 오주한씨를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오주한(吳走韓)이란 이름의 뜻은 '오직 한국을 위해 달린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청양 오씨 뿐만이 아니다. 오늘도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가문'이 탄생하고 있다. 통계로 보면 오천 년간 300개 미만이있던 성씨가 30년간 적어도 5천300개 이상 늘었고 모두 창성창본하였는데, 이는 실로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대한민국은 수많은 가문의 탄생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사회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음의 증거이다. 그러니 족보를 근거로 하여 양반이라는 허울에 갇히지 않기를 바란다. 관습으로도 관념으로도 진짜 양반과 새로 양반이 된 양반을 구별하고 찾아내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조상은 고관대작이었다 하는데 정작 그 후손을 자처하는 양아치들이 우리 사회에는 허다한 것도 이를 증명한다. 우리사회에는 '양반전'에 나오는 양반들이 득실득실하다. 그들은 권력으로 금권을, 금권으로 권력을 교환한다. 가증스럽고, 무능하고, 위선적이다. 호랑이해 '호질(虎叱)'이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작품 속 북곽선생이라는 자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높은 벼슬에 이르렀던 조상과 족보를 갖고 있다는 것은 관념적 양반의 품격을 갖게 하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양반 모두가 훌륭하였던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글로 만나는 양반은 선(善)일지 몰라도 이는 이상일 뿐이었다. 그러니 신분적 양반이 도의와 지조의 상징인 것도 아니다.

또다른 바람은 다문화 우리나라가
학벌로, 족보로 출신 차별받지 않고
어느나라 태생인지도 따지지 말아야


우리는 이제 3월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를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양반을 선출하는 자리는 아니지만, 지조와 결기가 있는 사람들이 당선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을 보아내는 안목이 우리 모두에게 깃들기도 간절히 소망한다. 표만 달라고 아첨하는 자를 선출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겠다. 당선만이 목적인 사람들이 선출되는 일도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바람은 다문화사회에 접어든 우리나라가 출신으로 학벌로, 족보로 하여 차별받지 않는 것이다. 어느 지역의 출신인지를 넘어 어느 나라 태생인지도 차별의 근거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래야 명실공히 양반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김구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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