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세월 만선 꿈꾸며… "물고기 잡아 자식들 다 키웠지"
'민물 어부' 이정섭(78)씨가 평택호에서 물고기를 잡은 후 귀항하고 있다. 내수면 어업은 청년들의 직업 선호도 하락, 민물고기 수요 감소, 댐 설치와 환경변화로 인한 수산자원 감소 등의 이유로 위기에 직면한 실정이지만 그는 40년간 평택호를 지키며 매일 작은 배를 이끌고 만선(滿船)을 꿈꾸고 있다. 2022.4.5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평생을 평택호와 살았어. 물고기 잡아 자식들도 다 키웠지."
이정섭(78)씨는 평택호 '어부(漁夫)'다. 처음부터 어부가 꿈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 목장사업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린 자녀가 둘이었던 이씨는 앞길이 막막했다. 그렇게 찾아온 게 고향 '평택호'였다.
처음에는 낚시꾼을 태우는 '뱃사공'으로 평택호와 만났다. 1979년 노가 딸린 작은 나룻배를 띄우고 낚시꾼들을 태웠다. 한 사람당 5천원, 꽤 쏠쏠했다. "당시 하루에 10만원 벌 때도 있었으니까 노가다(일용직)보다 나았어, 그렇게 한 3년을 했지."
뱃사공으로 평택호를 돌던 그는 1982년 어느 날, 물고기를 잡던 어부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이 이거 하면 괜찮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때 시작했지."
그물값이 비싸 한 사람당 3~4개밖에 못 쳤고 기술 하나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뛰어들었는데, 물고기는 잘 잡혔다. 치어 방류를 해야만 수산자원이 풍부해지는 지금과 달리 그물만 쳤다 하면 만선(滿船)이었다.
'민물 어부' 이정섭(78)씨가 평택호에서 물고기를 잡고 있다. 내수면 어업은 청년들의 직업 선호도 하락, 민물고기 수요 감소, 댐 설치와 환경변화로 인한 수산자원 감소 등의 이유로 위기에 직면한 실정이지만 그는 40년간 평택호를 지키며 매일 작은 배를 이끌고 만선(滿船)을 꿈꾸고 있다. 2022.4.5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어부로 벌써 10년의 시간을 보낸 그는 다른 일을 찾을 수 없었다.
다른 어부들은 하나 둘 평택호를 등졌지만 이씨는 떠나지 않았다. 남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매일같이 평택호에 배를 띄웠다. 주 어업 시기가 아닌 가을·겨울에도 작업해 보고, 양식장도 차려봤다. "정말 부지런히 했지.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태우고, 애들 가르치려고. 평택호에서 잡은 고기로 자식도 키우고 생활을 했어."
굴곡을 타는 생활에 모터 달린 배도 뒤늦게 샀다. "그때 그 배를 살 돈이면 얼만데, 처음에는 비싸서 사지도 못했다가 나중에 바꿨어."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평택호 어부다. 이제는 자식들도 다 결혼하고 제 밥벌이를 하고 살지만, 이씨는 여전히 매일 같이 평택호에 배를 띄운다. "고기를 잡으면 재미가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싫지가 않더라고. 부지런히 하고 노력하면 그만큼 대가가 나왔으니까." → 관련기사 3면([통큰기획-경기도에 '민물어부'가 산다·(1)] 경기도내 어부 40년새 3363→1144명… "힘든일 대물림 안 하고파")
/신현정기자 g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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