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도, 숨진 피해자도 공동생활했던 지적장애인… 보호시스템 여전히 '먹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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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
김포 장애인 시신 암매장 사건은 지적장애인 보호를 위한 사회안전망에 빈틈이 있음을 보여줬다. 이 작은 틈은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는 주체 간 '정보의 벽'이다.피의자들과 피해자는 지적장애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공동생활을 했던 사이다. 피해자가 사망하기 전 아동보호전문기관, 주민복지센터, 장애인복지관, 경찰 등 여러 기관은 저마다의 이유로 사건 당사자들을 대면했다.이들 기관이 마주한 정보는 그러나 단편적인 조각으로만 남겨졌다. 각 기관이 획득한 정보를 취합하면 피의자들과 피해자의 동거는 분명 위태로웠다.
피해자 E(28·남)씨가 A(30·남)·B(27·남)씨에게 폭행을 당해 숨진 시점은 지난해 12월 중순이다. E씨는 같은 해 9월 피의자 일당과 인천 남동구에서 동거를 시작했는데, 4개월간 지속적인 폭행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E씨는 계속된 폭행으로 거동이 어려워 집에서 기저귀를 착용하고 방치됐다.
그런데 E씨가 숨지기 두 달 전 암매장 사건 주범인 B씨에게 그가 '감금·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제3자의 112신고가 있었다. 경찰은 즉시 현장에 출동했지만 당시 신고는 현장에서 종결 처리됐다. 신고에 등장하는 당사자가 모두 집을 비운 탓에 출동 경찰관은 E씨에게 전화통화로 피해 사실을 물었다.
E씨는 감금·폭행을 당한 사실이 없다며 모든 피해 사실을 부인했다. 경찰은 피해자로 지목된 E씨의 진술과 현장에 있던 A·C(25·여)·D(30·여)씨의 증언 등을 토대로 신고내용의 신빙성이 낮다며 철수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E씨는 폭행신고 무렵에도 이들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폭행신고 현장에서는 가족 등 신뢰관계인을 동석하도록 권고한 지적장애인 조사지침이 작동하지 않았다. 지침의 전제조건인 '장애 여부 파악'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경찰교육원·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지난 2014년 함께 발간한 '장애인 경찰조사 가이드라인'은 지적장애인을 조사할 때 신뢰관계인을 동석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그마저도 의무사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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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지적장애인 시신 암매장사건 피해자가 머물던 인천 남동구 주택 대문에 장애인기관 관계자 명의로 '연락을 부탁드린다'는 쪽지가 붙어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다기관 협력체계가 가동된다면 출동 경찰관이 상황을 판단하거나 수사할 때 더 효율적일 가능성이 분명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암매장 사건의 전말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접촉한 여러 기관 또한 '한정된 정보'를 어려움으로 토로했다. 실제 개인정보 제한으로 인해 폭행신고 수사도, 사건 당사자를 둘러싼 기관의 지원도 충분치 못했던 측면이 있다. 피해자와 피의자들의 동거가 불안하다는 신호는 단발적이나마 꾸준히 있었다.
단적인 예로 피의자 A·C씨 사이에는 갓난아이가 있었는데, 부모의 방임으로 지난해 분리 조치된 사실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올해 초에는 이들의 궁핍한 형편을 딱하게 여긴 이웃주민이 주민복지센터에 지원을 요청하는 일도 있었다.
이번 사건 피의자를 알고 있던 장애인복지관 관계자는 "관할 지자체 등과 정보를 공유할 시스템이 없어 이들의 개인정보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며 "당사자 요청이 없으면 도움을 주고 싶어도 못 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포에서 지적장애2급 20대 아들을 돌보는 김경숙(55·여)씨는 10년째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김씨의 아들은 지하철 타는 게 낙이다. 지하철에만 오르면 마음이 안정되고 그렇게 즐거워할 수 없는데, 코로나19 이전까지 일주일에 꼭 한 번은 2~3시간씩 지하철을 탔다.
김씨는 "문제는 비장애인들이 봤을 때 아이를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다는 거다"라며 "아이가 지하철에 타면 항상 두리번거리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이 때문에 누군가의 표적이 되고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단 생각에 마음을 졸인다. 또 괜히 여성을 잘못 접촉하기라도 했다가 성추행으로 몰리면 얼마나 곤혹스럽겠느냐"고 했다.
이뿐 아니라 그는 "아이가 길에서 이어폰 들으며 걷는 걸 좋아하는데 차량 운전자와 시비가 붙는다면 대처가 안 된다. 내가 가르친다고 가르쳐도 현실에서는 일이 커질 여지가 너무 많다"며 "지적장애인들이 사건·사고에 연루됐을 때는 현장에서 조사하지 않고 반드시 가족 입회하에 추후 진술을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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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2급 아들을 둔 김경숙씨는 "지적장애인들이 사건·사고에 연루됐을 때는 현장에서 조사하지 않고 반드시 가족 입회하에 추후 진술을 보장해주면 좋겠다"고 호소한다. 2022.5.19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
인천의 자폐장애 청소년 가족인 김현미(48·여)씨는 아들이 언젠가 자립해 홀로서기 하는 날을 꿈꾸지만 그런 날을 상상할 때면 걱정이 앞선다. 김씨는 "아들에게 선의로 접근하는 사람이라도 일단은 의심부터 하게 된다"며 "누군가 정체 모를 서류에 지장을 찍으라고 하면 아무 의심 없이 지장을 찍을 아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아들은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남들보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아들이 또래에게 따돌림당한 경험이 있기에 그는 주위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 아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엄마와 학교의 테두리 안에 있었지만 성인이 되어 자립하면 이 테두리마저 사라진다.
김씨는 "아들이 홀로서기를 하면 범죄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며 "지적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경찰이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린다. 행여 무슨 일이 생기면 부모 등 평소 친밀한 사람이 대신 발언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순경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부대표는 "지난해 5월 경찰이 답변을 잘 못 하는 장애인을 불법체류 외국인으로 오인해 체포한 사건이 있었다"며 "이 사건은 지적장애인이 진술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게 여실히 드러남과 동시에 경찰이 장애인을 대할 때 매뉴얼이 부실하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진술을 도울 만한 조력인을 배석해 경찰 조사에 임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강화해야 하고, 지적장애인을 전담하는 경찰을 두는 것도 좋은 대책"이라며 "장애인 담당기관끼리 협력이 되지 않아 범죄를 사전에 방지하지 못하는 건 문제다. 장애인 범죄에 대해서는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우성·배재흥·변민철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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