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기고] 인간이 그은 경계선을 무시하고 흐르는 임진강 -한강 하구를 살리자 ②

노현기 발행일 2022-06-29 제18면

노현기-dmz생태보전시민대책위원회.jpg
노현기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어느 추운 겨울날 파주 반구정 정자에서 입을 쩍 벌린 채 임진강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닷물은 꽁꽁 얼어붙은 강을 깨고 켜켜이 겹친 얼음덩어리를 밀며 올라오고 있었다. 바닷물에 밀리며 얼음이 깨지고 부딪치는 굉음은 경이로웠다.

고향 마을에서는 임진강이 보이지 않는다. 초등학교 때 방학이면 놀러 가는 외갓집 마을 근처에 강이 있었고 사촌들과 강펄에서 삼태기로 고기를 잡았다. 저 멀리 강 끝에 철조망이 보이고 포소리, 총소리인지가 들렸다. 외갓집에서 고기 잡던 그 강을 임진강인가 보다 생각했다. 고향으로 돌아와 임진강을 지키면서 공릉천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은갈색 강펄을 드러내며 별로 넓지 않은 물이 흐르기도 하고, 물이 꽉 차 넓은 강이 되기도 했지만 늘 조용하던 임진강이었다. 그러나 요동치는 역류(逆流)가 있다는 것을 얼음을 깨고 밀고 들어오는 바닷물을 보며 처음 알았다. 


정전 뒤에 DMZ이라는 분단선
바닷물 역류하는 하구 전구간은
철책선 안을 흐르는 슬픈 강


임진강은 북한 두류산에서 발원하여 분단선인 DMZ를 넘어왔다. 연천에서 잠깐 철책선 밖을 흐르지만 파주에서 임진강은 전체 민간인통제구역 철책선 안을 흐른다. 마지막 탄현의 만우천이 흘러들어오는 곳부터 DMZ를 지나 중립수역이 시작된다. 남쪽의 파주 탄현과 북쪽의 개풍군 관산반도 사이를 흘러 오두산 통일전망대 앞에서 한강과 만난다. 우리 선조들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을 '두 개의 물줄기가 서로 사귀는 곳'이라는 뜻으로 교하(交河)라 불렀다.

강물은 산에서 발원하여 바다로 흘러간다. 그러나 강물은 바다로만 흐르지 않는다. 달이 시키는 대로 하루 두 번씩 육지를 향해 밀려오는 바닷물은 강이 시작된다고 멈추지 않는다. 단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괴물'인 방조제, 하굿둑 따위에 막혔을 뿐이다. 역설로 인간이 저지른 엄청난 죄악, 한국전쟁과 분단은 한강 하구를 바닷물이 마음껏 역류할 수 있는 강물 본연의 자유를 허락했다.



인천 앞바다에서 밀려온 바닷물은 인천 교동도와 강화도 북단, 강화도 동쪽의 염하, 김포와 개풍사이 조강을 거침없이 흘러들어온다. 한강과 임진강이 사귀던 교하에서 이번엔 서로 헤어진다. 임진강으로 흘러들어온 또 하나의 물줄기는 장단반도와 문산 사이에서 급격히 휘돌아 동북쪽으로 거침없이 밀고 간다. 바닷물은 동파리와 임진리 사이에 있는 하천 위의 섬 '초평도'에서 거친 숨을 내뱉는다. 비교적 얌전해진 바닷물은 이번엔 상류에서 내려온 민물과 밀당을 거듭한다. 활처럼 휜 흰색 가로띠를 만들며 민물과 밀고 당기는 바닷물은 파주 적성과 연천 고랑포 사이에 있는 '고랑포 여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45년 8월15일은 한반도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동시에 5년 뒤 더러운 전쟁을 예고한 분단이 시작된 날이다. 38선은 연천 백학과 파주 적성 사이에서 임진강을 남과 북으로 갈랐다. 남과 북의 완전한 단절은 정전 이후였다. 1950년 6월25일 시작된 한국전쟁 3년 동안 임진강은 전쟁이라는 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핏물이 흐르는 시뻘건 강이었다.

수십만년 전부터 그 길 흘러가며
온갖 오염물질·쓰레기 쌓고 산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정전' 뒤에 DMZ라는 분단선을 만들었다. 분단선 남쪽으로는 '민간인통제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철책선을 쳤다. 바닷물이 역류하는 임진강 하구역 전 구간은 철책선 안을 흐르는 슬픈 강이다. 다른 한편 철책선 안을 흐르기에 국가와 자본이 강에다 저지른 온갖 패악질을 피한 행복한 강이 되었다. DMZ라는 남과 북의 경계를 넘어 흘러왔듯, 임진강은 행정구역을 구분하는 경계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수십만 년 전부터 흐르던 그 길을 갈 뿐이다.

동시에 홍수 때면 북쪽 땅 상류 구간에서 흘러온 엄청난 민물과 바다에서 온 밀물이 만나 파주 문산, 파평, 적성 등 강변 마을을 덮치기도 한다. 또 상류에서 내려오고, 바다에서 밀려온 온갖 오염 물질과 쓰레기도 고통스럽게 강펄에 쌓아 두고 산다.

/노현기 임진강~DMZ 생태보전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