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복지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발인이 2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중앙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2022.8.26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세 모녀 가정의) 큰아들이 죽기 전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려고 했어요."
지난 26일 오후 수원 세 모녀의 주민등록상 주소지인 화성시의 한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오모씨를 만났다. 세 모녀 가정의 큰아들 A씨와 어린 시절 '동네 형·동생'으로 인연을 맺은 오씨는 A씨와 세 모녀가 그간 겪었던 어려움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세 모녀의 주소지가 오씨의 주택으로 등록된 이유도,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온 세 모녀 가정의 딱한 사정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씨는 "A씨 아버지가 하던 알루미늄 제조업 사업이 1990년대 후반부터 힘들어지기 시작하더니 2000년대 초반 부도를 맞았다. A씨 아버지는 이때부터 방랑 생활을 했고, A씨와 어머니, 두 동생은 수원으로 도망치듯 이사갔다"면서 "채권자들이 이사한 주소지로 찾아 올 까봐 A씨가 우리 집에 주소지 등록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20여년 전 수원으로 거주지를 옮긴 A씨와 세 모녀는 그때부터 월세방을 전전했다고 한다. 비좁은 집에 가족 4명이 모두 살 수 없어 세 모녀만 한 집에 살고, A씨는 정해진 거처 없이 지인의 집이나 찜질방 등에서 생활했다. 아버지가 가족과 떨어져 도피 생활을 하면서 세 모녀 가정의 생계는 수원의 한 설계사무소에 취직한 A씨가 대부분 책임졌다.
10여 년간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던 A씨는 건강이 나빠지면서 지인의 추천으로 택배 기사 일을 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A씨의 수입은 가족 4명의 생활비로 고스란히 쓰였다. 그러던 중 A씨는 병원에서 희귀병 진단을 받은 뒤 몇 개월 간 투병을 하다 지난 2020년 4월 세상을 떠났다. 죽음을 앞둔 A씨의 마지막 걱정거리는 남은 세 모녀였다.
오씨는 "A가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면서 나를 찾아왔었다. 자기가 죽고 나면 아픈 어머니와 두 동생이 생계유지를 할 수 없으니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한다고 했다"면서 "그런데 결국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빚 독촉'에 시달리게 될 거라고 극구 반대했다고 하더라"고 안타까워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되면 거주지가 특정돼 채권자들이 집으로 찾아올 수 있다는 걱정을 한 것이다.
세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수원시 권선구의 한 다세대주택 현관문에 폴리스라인이 설치돼 있다. 2022.8.22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24일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수원 세 모녀'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2022.8.24 /김동연 지사 페이스북 |
수원 세 모녀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정부와 경기도는 속전속결로 대책을 마련했다. 우선 보건복지부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위기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경기도는 '핫라인'을 구축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도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청취하겠다고 발표했다.
위기가정을 찾는 시스템이 강화되고, 다양해진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근래 쏟아진 이 같은 대책들이 수원 세 모녀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수원 세 모녀는 빚 독촉을 피해 스스로 사회 보장 제도 바깥에 있었고, 이는 기존 복지 사각지대와 다른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전문가들 역시 수원 세 모녀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시스템의 한계'로 단순화하긴 어렵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특히 이들이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행적과 심리상태 등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심리부검'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나왔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수원 세 모녀가 복지 대상자로서 요건을 다 갖추었는데 사회복지 시스템이 가동을 안 해 사망했다고 단순화하긴 어려운 부분이 많고, 기사로 접한 정보만으로도 수원 세 모녀 사건은 여러 이슈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심리부검을 통해 이들이 겪은 어려움을 면밀하게 추적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심리부검 결과를 기반으로 수원 세 모녀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배재흥·김준석기자 jhb@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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