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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태풍, 매미

명종원
명종원 light@kyeongin.com
입력 2022-09-0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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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원 정치부 기자
사람들은 매미를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낸 뒤 빛을 보는 곤충이라고 말한다. 6년여의 시간을 땅속에서 보낸 뒤에야 날개를 펴고 바깥으로 나와 길어야 겨우 보름을 울다가 수명을 다해서다. 그마저도 새에게 먹히거나 인간에게 잡히면 결실을 맺는 시간은 더욱 짧다.

찰나의 비상을 위해 수년이라는 세월을 견디는 매미는 그래서 다른 곤충들보다 조금 더 경외로운 존재로 여겨지는 듯하다.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매미는 안타까운 곤충이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만큼이나 그 이상의 시간을 누리는 삶이어야 소위 말하는 괜찮은 삶이 아니겠나.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불행히도 주변에 매미들이 많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결실의 순간을 기다리며 버티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정치를 하겠다며 도전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친구가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직종을 바꿨다가 또다시 취업시장에 내몰린 친구도 있다. 둘에게 돌아온 당장의 결과는 좌절과 실패였으나 다시 일어설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하니 한편으론 다행이다.

비단 내 주변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테다. 지난 선거에서 출사표를 던졌던 정치인들도 인내하며 버티는 삶을 보내고 있다.

지선에서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섰던 소수정당의 한 후보는 물류센터에서 '상탑(컨베이어 벨트에 물건 올리기)' 작업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또 다른 후보는 중앙당사 홍보팀 당직자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모두들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자리에서 악착같다. 존재를 증명해내기 위해 몸을 최대한 웅크려 숨죽이는 모습은 모순되게도 필사적으로 느껴진다.

수많은 매미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자고 제안한다면 주제 넘는 짓일 게다. 각자가 그리는 하늘도 다르다.

태풍과 함께 매미 울음소리도 멎었다. 버티는 삶의 결실을 위하여, 돌아올 여름엔 매미가 더 오래 울었으면 싶다.

/명종원 정치부 기자 light@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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