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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향기를 찾아서] 비밀한 고독

입력 2023-01-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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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박꽃이 그럴까 / 장미꽃이 그럴까 / 찬란하게 번득이는 형상 / 그 속엔 / 좀처럼 알아차릴 수 없이 / 침윤된 독소처럼 철저히 숨어 / 몸부림치는 아우성이 살고 있더이다



가끔은 부서진 / 서릿발로 만상에서 새우잠 자고 / 시린 기류 끝에서 달랑달랑 흔들리다가 / 스스로 제 알몸 찾아가고 마는 / 가엾은 나그네, / 천지에 구르는 웃음 저 밑바닥에 / 진공 포장되어 사는 넌 / 그 몹쓸 고독이란 정체이더이다

-조덕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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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장 시인
무엇인가를 내세우려 남에게 자신을 알리는 건 본능이다. 또한 누구나 남에게 알리지 않고 숨겨야 하는 본능이 있다. 알리는 것과 숨겨야 하는 것의 차이점은 없다.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알려야 할 때는 위급함이나 자랑할 만한 일이 있을 때, 숨겨야 할 때는 무슨 일에 대하여 부끄러워하든가 아니면 남모르게 감춰야 할 비밀이 있을 때다. 누구나 겪는 일상이지만, 삶은 두 개의 모순점을 얼마나 더 많이 드러내는가에 따라 질과 양이 다르다. 자랑이 많다면 허구가 있다고 해도 일부의 성공을 얻었고. 비밀이 많다면 갈 길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비밀 중에 가장 힘든 게 무엇일까. 고독의 비밀이다. 비밀이 많을수록 허세가 크고 비밀이 깊을수록 내면의 사유가 깊어져 사람은 아픔을 느낀다. 홀로 있는 듯이 외롭고 쓸쓸한 감정은 사람을 병들게 하지만 감정을 지닌 사람으로서 피해 가지 못한다. 삶에서 가장 큰 고독은 사랑이 피어날 때다. 장미꽃처럼 화려하지만 그 속을 알 수 없어 외로움을 타기도 한다. 조덕혜 시인은 그 환상적인 고독에 빠졌다. 그러나 형상이 있는 모든 물상 속에서 서릿발 밟듯 위태롭게 헤매다가 마침내 껍질을 뚫고 비밀의 포장을 벗겨냈다. 고독은 천지에 구르는 웃음 저 밑바닥에 진공 포장된 허상이라는 것을 알아내었다. 그렇다. 삶에 비밀의 고독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 의식적으로 감출 뿐이다. 드러내지 않으면 힘들다. 자랑하듯 알려야 삶은 행복하다는 시인의 말은 허구가 아니다.

/이오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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