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 연구원이 문수산성 북문(좌측 상단)에서 이어지는 서측 성벽 회절구간을 설명하고 있다. 성벽이 발굴된 자리는 이전에 텃밭과 묘터로 사용되고 있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
한낮 기온이 30도를 웃돌며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16일 오후,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군 경계철책 앞에서 (재)국토문화재연구원 이규민 연구원이 속살을 드러낸 성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구자림·이정현 연구원과 함께 올해 3월부터 문수산성 서측 성벽을 발굴해왔다.
市 학예연구사 "유실성벽 매장문화재 조사" 제안
성벽 흔적 발견되며 1~4차 정밀발굴조사로 발전
19세기 지도에 현 지적도 비교분석해 위치 추정
수년째 이어진 문수산성 정밀발굴조사의 윤곽이 점점 드러나고 있다. 문수산성은 1694년(숙종 20년) 축조한 성곽으로,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격전을 치른 유적이다.
병인양요로 인해 사라진 줄 알았던 해안 쪽 성벽은 우연한 계기로 세상에 나왔다. 지난 2017년 문수산성 보수정비사업을 마치고 예산이 남았는데, 김포시 문화예술과 소속 학예연구사는 완전히 유실된 걸로 판단되던 서성벽 1.2㎞ 구간에 대해 이 잔여예산으로 매장문화재 시굴조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문화재가 있는지만 확인해보려던 게 성벽 흔적까지 발견되면서 지금의 정밀발굴조사로 발전했다.
2019년 1차 조사에서는 문수산성 7개의 출입로 중 하나였던 '서아문'과 물길을 뜻하는 '수구' 등이 발굴됐다. 이어 2021년 구간을 넓혀 2차 조사를 벌인 결과 외측부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지정보축석렬' 등을 확인했고, 지난해 3차 조사에서는 체성부(성벽 몸통)와 성문지(문이 있던 자리)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현재 4차 조사에서는 북문 인근 서성벽 회절구간과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한 방어시설 '여장', 공해루(서문의 이름)로 추정되는 성문지 기초 등을 발굴하는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중 무너지기 쉬운 회절 구간은 축조과정에 대한 연구가치가 있으며, 여장은 2019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 발견됐다.19세기 후반 강화도지도 8폭중 제2폭에 등장하는 문수산성(상단 지도에서 강 건너편)과 현재 발굴조사 현장. /김포시 제공
서성벽은 내륙 쪽 성벽과 달리 강화해협을 타고 침공한 프랑스 함대에 맞서 필사적인 항쟁이 벌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번 조사에서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한 방어시설 '여장'도 처음 발견됐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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