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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대형 라이트' 불침번 서는 영흥도

김주엽
김주엽 기자 kjy86@kyeongin.com
입력 2023-06-19 19:59 수정 2023-06-19 22:03

석양이 지면 갯벌에 사이렌이 울린다

영흥 내리어촌계 어업인 해루질 감시 붎침번4
지난 17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내리에서 늦은 밤 해루질을 하는 동호인들이 어민들이 비추는 라이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갯벌로 들어가고 있다. 2023.6.17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위이이잉~'.

지난 주말인 17일 오후 8시께 인천 옹진군 영흥도 하늘고래 전망대 인근에서 확성기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 일대 갯벌에서 조업하는 영흥도 내리 어촌계 회원들이 '해루질'(얕은 바다나 갯벌에서 맨손으로 해산물을 잡는 행위)을 하는 외지인을 발견하자 확성기 사이렌을 켠 것이다.

최근 2~3년 동안 영흥도 갯벌에서 매일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다. 해루질을 하는 외지인이 많아지면서 수산자원이 줄자 어민들이 생계 터전을 지키기 위해 확성기와 대형 라이트까지 동원해 불침번을 서고 있다.

하지만 외지인들은 어민들의 눈을 피해 몰래 갯벌로 내려가고 있다. 어민들이 확성기 사이렌을 울리거나 라이트를 켜며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외지인들의 해루질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어촌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날도 해루질을 하러 온 외지인 10여명이 랜턴을 모두 끄고 갯벌로 걸어 들어갔다. 이를 발견한 어촌계원들이 "그렇게 모두 잡아가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사느냐"고 소리를 질렀지만, 이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깊은 갯벌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불침번을 서고 있던 영흥도 내리 어촌계 박준영(66) 계장은 "평일에는 20~30명, 주말에는 70~80명 정도의 사람이 어민들 몰래 갯벌에 들어가 수산물을 마구잡이로 채취하고 있다"며 "어민들이 어장을 지키기 위해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불침번을 서고 있지만, 해루질을 온 사람들은 본 척도 하지 않고 갯벌에 들어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민, 해루질 맞서 생계 사수 역부족
"주말 70~80명 마구잡이 수산물 채취"
인명사고 위험에 해경 구조정 순찰


십리포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갯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어민들은 마을어장인 이곳에 바지락 등 조개류 종패를 뿌려 놓고 키워서 수확한다. 그런데 외지인들의 해루질로 종패들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고 어민들은 푸념한다.

내리어촌계 임동철(75)씨는 "이곳은 나흘 전에 바지락 종패를 방류한 곳인데, 해루질을 하러 온 사람들이 모두 밟아 놔 애써 뿌려 놓은 종패들이 모두 죽게 생겼다"며 "주민들의 생계에 위협을 주면서 하는 행동이 어떻게 취미 생활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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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영흥면 내리에서 늦은 밤 해루질을 하는 동호인들이 어민들이 비추는 라이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갯벌로 들어가고 있다. 2023.6.17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외지인들의 해루질에 해경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달 8일에는 야간에 갯벌에서 몰래 해루질을 하던 60대 여성이 고립돼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 일대 갯벌은 움푹하게 파인 갯골이 곳곳에 있어 물이 갑자기 밀려 들어올 경우 바다에 빠지기 쉽다는 게 해경 관계자 설명이다.

해루질로 사망자까지 생겨나자 해경은 밀물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혹시 모를 구조 신고에 대비하기 위해 연안구조정으로 순찰을 하고 있다.

인천해양경찰서 영흥파출소 우경호 소장은 "서해는 조수 간만의 차가 크기 때문에 밀물이 밀려오기 시작하면 곧바로 갯벌에서 나와야 한다"며 "특히 안개가 끼는 날에는 육지 방향을 알기 어려우므로 절대 해루질을 하러 갯벌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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