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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형선 행정학박사·前 한국정책학회 부회장 |
나의 고향은 화성시의 맨 서쪽 끝 바닷가 마을이다. 그래서 나에겐 어린 시절 갯벌에서 바지락과 낙지를 잡으며 수영하고 놀던 추억이 있다. 그때 놀던 갯벌은 지금은 간척지가 되어 바닷물은 안 들어오지만 긴 방조제 건너편 둑방에는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포구와 큰 어시장이 생겨 수도권 시민들에게 주목받는 관광지로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요즘 관광객의 발길이 급격하게 줄고 있어 고향의 어민과 횟집 소상공인의 시름이 크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름 아닌 전국적으로 시끌벅적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방류 이슈 때문이다. 아직 방류도 하지 않았고 설사 방류를 하더라도 해류 이동 방향에 따라 러시아, 캐나다, 캘리포니아 해안 등을 거쳐 4, 5년 뒤에야 우리나라 해안으로 도착한다고 하지만 우리 국민은 벌써 생선을 안 먹기 시작한다. 금명간에 가부가 명명백백하게 가려질 사안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강한 이슈성을 가진 사안이니 참으로 걱정이다. 과학적으로 규명해 나갈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한데 우리의 정치 현실은 그러한 이성적인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e)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우리나라 과학자를 포함하여 미국, 중국, 프랑스, 캐나다 등의 과학자가 참여하여 수행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정밀 조사 결과에 대해 야당은 IAEA를 일본 용역업체 운운하며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IAEA는 최종보고서에서 도쿄전력이 개발한 다핵종제거설비 등을 기반으로 하는 오염수의 해상방류 조치가 IAEA의 안전기준에 부합하며, 인간과 환경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종합 결론으로 제시하였다.
먹거리에 대한 안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한 점에서 야당의 우려와 IAEA 결과보고서에 대한 이의 제기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어느 쪽도 지금 시점에서 소위 '100% 객관적인 결과'를 제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100%의 객관적인 결과는 30년간의 방류가 모두 끝나고도 자연생태계가 방류에 대한 반응을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지난 이후에나 확인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과학은 미래를 예측하거나, 이를 통해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대안 모색의 근거를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은 불확실성을 수반할 수밖에 없으며, 과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그 불확실성의 내용과 가설의 한계를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각국의 과학자들이 참여하여 조사·연구를 거쳐 도출된 IAEA 결과보고서는 30년간 방류가 모두 끝나고 얻은 100% 객관적인 결과가 담긴 보고서는 아닐지라도 분명 과학에 기반한 보고서이다. 적어도 주요 선진국의 최고의 과학자들이 채택한 연구방법론과 조사를 통해서 도출된 보고서라는 점에서 그 과학성을 부정하거나 방법론적 문제가 제기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논쟁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먹거리의 안전성에 관한 사안이면서 보고서의 결과와 대립하는 그 어떤 주장에 대해서도 100%의 반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치의 틈이 생기게 된다. 과학에 수반되는 불확실성의 틈 사이로 괴담을 침투시켜 정치적 효과를 더 극대화시킬 수도 있다. 웬만한 사회적 이슈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 있는 핵폭탄급 폭발력이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정치의 셈법으로만 본다면, 광우병 사태와 사드 사태 때처럼 정치적 유혹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정치 이슈는 그 용도가 다하면 어느 순간 폐기처분 되는 것을 우리 사회는 수없이 목도 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과학과 사실 앞에서 뒤죽박죽된 흙탕물 속의 흙과 물처럼 분리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치러야 할 우리 어민들과 소상공인의 민생 피해와 사회적 비용은 너무나 크다.
광우병 사태에서 축산농가가 그러했고 사드 사태에서 성주 참외농가가 그러했듯이, 이번 후쿠시마 오염수 사태에서도 또다시 우리 어민과 소상공인의 생존권은 도외시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장마철 아침 공기가 더 후덥지근하게 느껴진다.
/홍형선 행정학박사·前 한국정책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