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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공감] '수백억 가로챈 건축왕 사건'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 위원장

백효은
백효은 기자 100@kyeongin.com
입력 2023-08-08 20:15 수정 2023-08-11 15:04

"전세사기, 피해자 잘못 아냐… 홀로 절망 말고 함께 목소리 내자"

공감인터뷰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대책위원장11
속칭 '건축왕' 일당의 재판이 진행 중인 인천지방법원에서 만난 안상미(45)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세입자들의 보증금 수백억원을 가로챈 속칭 '건축왕' 일당의 재판이 진행 중인 인천지방법원에서 최근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안상미(45) 위원장을 만났다.

지난해 7월 전세사기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같은 처지인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 빌라, 오피스텔 세입자들과 함께 대책위를 꾸렸다. 안 위원장이 생업을 뒤로하고 거리로 나선 게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대책위는 인천시청, 인천지방법원, 국회 등을 찾아다니며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떼이고 집에서 쫓겨날 피해자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알렸다. 그 사이에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생겼다. 대책위는 고인들을 기리는 추모제를 열고, 즉각적인 경매 중지가 필요하다고 외쳤다.

 

공감인터뷰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대책위원장

 

대책위 활동은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이웃주민들끼리 모이며 시작됐다. 안 위원장이 사는 아파트가 통째로 경매로 넘어가게 되자 소송 비용을 몇 푼이라도 줄여보고자 주민들이 단체로 소송을 진행하자고 의견이 모였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던 안 위원장이 나서서 변호사를 만나고 경찰서를 다니며 피해 사실을 알리고 해결 방법을 찾아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아파트 동 대표가 됐다.

아파트 경매 넘어간 사실 알게 된
이웃 주민끼리 모이며 활동 시작
출범 1년째 매주 토요일 모임 가져
발로 뛰며 정보 공유… 언론 도움 요청
피해 후 소액 임차인 위한 보호 제도
작동 않는다 알게돼… 개선 필요성 느껴
안 위원장이 소송을 위해 만난 변호사는 현행법상 전세보증금을 되돌려받을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단다. 그는 또 한 번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려보라는 변호사의 조언에 안 위원장은 그렇게 언론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의 주범인 '건축왕' 남모(61)씨로부터 피해를 본 인근 세입자들이 모인 대책위는 지난해 10월 정식 출범했다.

 

대책위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간씩 제물포역 지하상가에서 모임을 한다. 출범 이후 1년째 이어오고 있는 자리다. 2천여 가구가 넘는 피해자들의 전셋집 경매 상황을 취합하고, 직접 발로 뛰며 얻은 건축왕 일당의 정보 등을 공유한다.



전세사기 피해를 본 이후 안 위원장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그는 "전세보증금은 전 재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며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버팀목이 된다"고 말했다. 생활이 어려우면 보증금이 적은 집으로 옮겨가 재기를 꿈꾸고, 보증금에 대출금을 보태 큰집으로 이사할 수도 있는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안 위원장은 "자기가 잘못해서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자책하는 세입자들도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이어 "법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피해자들을 더 좌절하게 한다"며 "집주인, 건축주, 부동산 중개업자 등 일당이 사기를 쳤지만, 피해자가 모든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지금의 잘못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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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을 잠시 멈추고 대책위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안 위원장은 그간 모아둔 돈을 아껴 생활하고 있다. 그는 "대책위의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다 보니 생업을 포기하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대책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위원들도 아내가 활동하면, 남편이 생업에 매진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안 위원장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봤다고 한다. 그는 "2년 이상 살았는데 주위에 누가 사는지 전혀 몰랐다. 대책위원장 활동을 하다 보니 궁금한 것을 물어오는 사람도 많고 주민들의 고충을 듣다 보니 주민들과 교류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면서 "고생한다며 음식을 나눠주고, 쌀을 나눠주는 이웃도 있다"고 했다.

이어 "대책위 활동을 응원하며 포항에서 신발을 보내준 이도, 대책위 활동에 보태라며 후원금을 보내는 단체들도 있었다"고 했다.

지난 6월 1일부터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 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됐다. 대책위는 구청 강당을 빌려 특별법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특별법 시행 이후부터는 인천 변호사회와 '찾아가는 법률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안 위원장은 "집에서 홀로 끙끙 앓는 사람들이 많고, 피해 지원책이 있어도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며 "이들을 위해 피해 아파트 1층에 부스를 차려 '찾아가는 법률 상담'을 주 2회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 위원장이 기자회견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피해자들에게 홀로 절망하지 말고 밖으로 나와 피해를 공유하고 함께 나서 목소리를 내자는 것이다.

안 위원장은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사람들한테까지 피해 사실을 공유하지 못해도 대책위 활동을 통해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위로를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에는 '전세사기 피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미추홀구 일대 전세사기 피해자 중 30%가량은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소액 임차인을 위한 '최우선변제금' 대상이 아니어서다. 안 위원장은 "전세사기 피해를 본 뒤에야 소액임차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감인터뷰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대책위원장1

전국에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 등은 올해 3월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대책위가 꾸려지고 있다.

"전국에서 전세사기 피해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어요.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고 활동한 것이 아마 전국에서 처음일 겁니다. 재판은 3~4년 긴 시간의 싸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지치지 않고 해나가려 해요."

안 위원장은 끝으로 "미추홀구 대책위가 무너지면 전국의 피해자들이 모두 무너지게 된다"며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수 있게 촉구하고, 피해자들이 모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심점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글/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안상미 위원장은?

안상미 위원장은 2022년 7월 말 인천 미추홀구의 전셋집의 아파트가 통째로 경매로 넘어가면서 속칭 '건축왕'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미추홀구 일대 피해자들이 모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3월엔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을 하나로 모은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 대책위원회'를 출범하고 공동위원장을 맡아 인천 미추홀구와 전국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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