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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만원의 무제한 대중교통-베를린을 가다·(上)] 베를리너 일상 바꾼 D-티켓… 사회 반경 넓어져

김명래·박경호
김명래·박경호 기자 pkhh@kyeongin.com
입력 2023-10-15 20:15 수정 2024-10-16 19:25

독일 전역 사용 '저렴' 노인 정기권서 갈아타… "사회 참여 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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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포츠담/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한 달에 49유로(약 7만원)만 내면 철도, 버스, 트램(노면전차) 등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도이칠란트 티켓'(D-티켓) 도입 이후 베를리너(Berliner)라 불리는 독일 베를린 시민의 사회적 반경이 크게 확장됐다.

올해 5월 D-티켓 도입 이후 5개월 동안 가장 달라진 점이다. 교통비 부담 때문에 움직임을 줄였던 베를리너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금 때문에 걷던 시민들에 '단비'
전보다 도시간 이동 자유로워져
'30분 거리' 포츠담역 평일도 붐벼
연착·과밀 심각 시스템 투자 필요


■ "베를린을 다르게 경험해요."


지난 6일(현지 시간) 옛 동베를린 시청사 인근에 있는 '알테 뮨즈(Alte Maenze) 베를린'을 찾았다. 알테 뮨즈는 1930년대부터 독일 화폐(마르크)를 주조한 조폐공장 건물을 베를린의 창작자들을 위한 작업실로 재생시킨 공간이다. 옛 동베를린의 상징인 알렉산더광장에서 멀지 않은 시내 중심부에 있다.

알테 뮨즈에 작업실을 꾸린 3D 애니메이터 알렉산더 파니에(Alexander Pannier·30)는 D-티켓을 쓰기 전 거주지에서 작업실까지 걸어서 다녔다. 그는 "지금은 집에서 알테 뮨즈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며 "D-티켓이 있기 전에는 대중교통을 타면 계속 돈(교통비)을 생각해야 했는데, 그게 싫어서 걸어 다녔다"고 말했다.



베를린 대중교통은 도심 내부를 잇는 지하철(U-Bahn), 간선 역할의 광역전철(S-Bahn),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급행열차(RB·RE)가 있다. 철도가 닿지 않는 지역은 버스와 트램이 연결한다. →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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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망이 촘촘하게 짜였다는 평가를 받는데도 요금은 부담이었다. 베를린 대중교통 수단은 통합요금 체계인데, 시내 범위 기준 1회권은 3유로(약 4천260원)다. 그는 "지인 대다수가 D-티켓을 쓰고 있고, 이젠 어디든 갈 수 있어 베를린 자체를 다르게 경험하고 있다"며 "티켓 가격은 지금보다 더 낮아져야 하고, 이상적으론 아예 무료화하는 게 좋다고 본다"고 했다.

베를린에 사는 한국 교민에게도 D-티켓은 단비와도 같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만난 박나라(30·독일 거주 11년)씨는 "다른 도시에 갈 일이 없어도 갈 일을 만들기도 하면서 전보다 도시 간 이동이 자유로워졌다"며 "시간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게 돼서 좋다"고 말했다. 박씨는 "D-티켓이 있기 전에는 항상 교통비를 생각하며 대중교통을 타야 했고, 교통비 부담에 많이 걸어 다녔다"며 "2시간 제한이 있는 1회권은 한 방향으로만 이용할 수 있어 머리를 잘 써야 했는데, D-티켓 이후 교통비에 대한 계산을 안 하게 됐다"고 했다.

D-티켓 도입 전보다 대중교통 이용이 늘어났다거나 다른 도시를 자주 여행하게 됐다는 반응도 많았다. 30대 음악가 팀 뢰데(Tim Loehde)는 "자가용은 전보다 훨씬 덜 타고 있고, 앞으로 새 차를 살 생각도 없어졌다"며 "소득이 적은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되면서 이들의 '사회적 참여'(die Soziale teihabe)가 더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 대중교통 이용↑ 개선 목소리도↑


서울~인천·경기처럼 베를린과 주변 도시 간 이동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지난 5일 오전 베를린 중앙역에서 급행열차를 타고 30분 거리인 브란덴부르크주 포츠담시로 향했다. 브란덴부르크주는 경기도, 포츠담시는 수원시로 생각하면 된다. 평일인데도 포츠담역은 북적였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도 많았다.

포츠담역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스테파니 노이호이젤(Stephanie Neuhaeusel)은 "D-티켓 시행 이후 철도 이용객이 코로나19 사태 한참 전보다도 많아졌다"며 "브란덴부르크에서 베를린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늘었다"고 했다.

이어 "특히 은퇴한 노인들은 브란덴부르크주 안에서만 사용하는 월 52유로(약 7만4천원)짜리 고령자용 정기권을 썼는데, 이젠 독일 전역에서 쓸 수 있는 데다 가격까지 저렴한 49유로 D-티켓으로 모두 갈아탔다"고 말했다.

포츠담 시내에 있는 음식점 '게노스 벡슈타트'(Genuss Werkstatt) 직원 콘라드(Conrad)는 "베를린을 자주 찾는데, 과거엔 왕복 교통비로 12유로(약 1만7천100원)가 들었다"며 "베를린 가는 데만 한 달에 4번 이상이라면 D-티켓을 사용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고 했다.

D-티켓으로 대중교통 이용률이 높아지자 베를린 시민들은 교통 인프라 확대와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나라씨는 "지난해 6~8월 '9유로(약 1만3천원) 티켓'을 시행할 때 열차 연착이나 과밀 문제가 심각했다"고 했다. 파니에는 "D-티켓 자체는 모두가 긍정적이지만, 대중교통 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나온다"며 "연방정부가 대중교통 시스템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독일환경지원'(DUH·Deutsch Umwelthlife)은 D-티켓에서 더 나아가 하루 1유로씩 1년에 365유로(약 51만9천원)만 내는 '기후티켓'(klimaticket) 도입까지 주장하고 있다. DUH에서 교통·대기 부문을 담당하는 한나 하인(Hanna Rhein)은 "D-티켓의 아쉬운 점은 이동 수단을 자가용에서 대중교통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것"이라며 "티켓 가격이 더욱 저렴해지고, 대중교통 시스템 자체도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베를린·포츠담/김명래·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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