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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K] 비행기도 숨죽이게 만든 ‘수능, 그 전설의 시작’

공지영
공지영 기자 jyg@kyeongin.com
입력 2023-12-16 14:25 수정 2024-01-02 15:54

원서접수

1982년 아주대학교 막판 원서접수하는 모습. 인터넷 접수가 없던 당시엔 눈치싸움이 치열했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올해 수능은 유독 말이 많았다. 수능 100일께 남겨두고 별안간 정부가 킬러문항과의 전쟁을 선포하는가 하면 사교육을 뿌리 뽑겠다며 학원가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기어코 킬러문항을 출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기습적으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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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22일 권선중학교에서 열린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습. /경인일보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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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22일 권선중학교에서 열린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습. /경인일보 아카이브

수능시험은 시험보기 전 몇달 바짝 준비하는 시험이 아니다. 짧게는 고등학교 길게는 초등학교부터 이어지는, 흡사 마라톤과 같은 긴 여정인데, 결승선에 다다를 때쯤 심판이 룰을 바꾸겠다며 정지휘슬을 분 셈이다. 정부의 기습적인 ‘수능 방향 틀기’에 입시만 보며 전력질주 하던 학생과 이를 뒷바라지 하던 학부모들이 황당을 넘어 분노하기까지 한 건 그런 이유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렇듯 수능날은 다가왔고 시험은 치러졌다. 킬러문항이 사라진 자리에 준킬러문항이라는 고난이도 문제들이 대거 등장했다. 변별력을 두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게 출제위원들의 항변이다. 이로 인해 ‘만점’이 딱 1명 뿐인 수능이라는 역대 기록을 세웠고 1,2명만 죽이는 킬러문항 대신 다수를 죽이는 준킬러로 ‘역시 입시는 사교육’이라는 공식만 더 선명하게 해준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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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93년 12월 효원고등학교에서 입시상담이 진행되는 모습. /경인일보 아카이브

이번주 레트로K는 대학입시시험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갈등의 한 축을 담당하는 수능의 역사를 따라가봤다.

1993년은 학력고사 시대를 끝내고 처음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해다. 이때는 수능을 2회에 걸쳐 보았는데 여름에 1차, 겨울에 2차 시험을 본 뒤 우수한 성적을 기준으로 입시에 적용하는 시스템이었다.

1993년 8월 4일자 경인일보에는 ‘수능시험 시기·횟수 불합리’ 기사가 실렸다. 첫 수능을 보름 앞두고 우려와 긴장의 목소리가 높은 학교 현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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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20일 지면보기 클릭

제1차 대학입학수학능력시험일(8월20일)이 15일 앞으로 다가운 가운데 경기도내 일선고교 교사와 학부모들은 수능시험이 학사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결정돼 갖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일선고교 진학지도교사들은 1차수능시험이 2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치러짐으로써 2학기의 학사일정 추진과 수업진행에 있어 커다란 문제점으로 대두될 것이라고 벌써부터 우려하고 있다.


이때 수험생과 교사, 학부모들도 정부가 수능시험 일정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1차시험이 끝나고나면 본고사를 준비하는 상위권, 2차시험을 다시 치르려는 학생, 2차시험을 아예 포기하고 수능시험과 내신성적으로 선발하는 대학의 지망생 등 3가지 그룹이 형성돼 수업진행의 혼선은 물론 고교교육의 마무리 과정이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

이에 따라 일선학교 교사들은 수험들에게 이중의 부담을 주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내년부터 연1회만 치를 것을 요구하는 한편 실시시기도 종천처럼 12월 중순께 시행하는 것이 학사일정에 효율을 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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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22일 권선중학교에서 열린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시 모습.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엄마의 모습은 지금과 다르지 않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대망의 첫 수능시험날 풍경은 우리 머리 속에 있는 현재의 수능과는 다르면서도 같았다. 교문 밖에서 자녀를 기다리는 어머니들의 옷차람이 반팔인 것은 생경했지만, 기도를 하거나 절을 하는 모습은 지금과 다를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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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28일 지면보기 클릭

1993년 8월 28일자 경인일보 ‘생소한 문제 많아 당황, 오늘 첫 수능시험 언어·수리탐구 교과서내 30% 출제’ 기사에는 첫 수능을 치른 그날의 풍경이 생생하게 담겼다.

수험생들은 이날 공무원과 기업체의 출근시간을 오전 10시로 늦췄음에도 불구, 오전 7시부터 수험생을 태운 자가용들이 시내 곳곳의 간선도로로 쏟아져나와 한떄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기도 했으나 별다른 사고 없이 8시 30분까지 입실을 완료했다.

늦여름의 비교적 쾌청한 날씨 속에 치러진 이날 시험에서 수험생들은 새로운 대입제도의 첫번째 경험자라는 점과 아직도 상당수가 통합교과 적인 문제에 생소함을 느껴 다소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7차례의 실험평가경험을 토대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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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1월 22일 권선중학교에서 진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모습. /경인일보 아카이브

첫해 2차로 치뤄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 이후 대한민국 대학입시는 이제 ‘수능’의 시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수능 시스템으로 일선학교와 수험생들은 혼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고3담임교사들과 학생들은 새로운 대입제도 아래서 처음 맞는 대학입시가 예년에 비해 지원과정이 복잡한데다 변수가 많이 작용, 학교 및 학과 선택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18일 도내 인문계고교에 따르면 94년도 대학입시는 사상 처음으로 치러진 수능시험이어서 지망대학·학과의 판단기준이 되는 점수가 입시 전문기관과 고교에 따라 판단자료가 없어 천차만별인데다 대학별로 수능시험영역별 가중치적용, 동일계가산점, 본고사와의 상관관계 등 복잡한 요소들이 많아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것.

특히 이번 대입에서는 대학의 복수지원이 허용됨에 따라 일부 수험생들의 경우 심지어 5~6개 대학의 원서를 작성, 지원에 대한 판단이 흐려질 우려가 있는가 하면 진학지도교사들의 업무부담마저 가중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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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2월 8일 수원대학교에서 체육과 대학입학 실기시험을 보고있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혼란했던 첫 수능이 지나고 95학년도 수능은 고득점자들의 수능 공부 비법도 소개됐다. 1994년 12월21일 “수능 인천수석 영광의 얼굴” 기사에는 인천지역 자연계 수석을 차지한 이용주군과 인문계수석 박성민양의 인터뷰가 실려 학부모·학생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들이 강조한 비법은 공통적으로 ‘교과서’와 ‘성실’이었다.

“좋은 성적을 얻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지만 인천수석은 생각도 못했다. 이번 수능시험이 마지막 이라는 부담 때문에 다소 어려움은 있었어도 학교에서 배운 기초를 착실하게 예·복습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이용주군 인터뷰

“수능시험을 앞두고 문제지 위주의 학습과 교과서 내용을 체계적으로 공부한 것이 어느정도 적중한 것 같다” -박성민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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