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에 남긴 '신석기 삶의 흔적'
신안리 4차 발굴 마치고 기록 보존
8기 추가 발견돼 주거지 42기 확인
생활모습 유추 가능한 증거들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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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신안리 신석기 유적 4차 발굴조사에서 나온 수혈식 주거지. /김포시 제공 |
김포 덕포진 유적지 남쪽으로 뻗은 작은 구릉, 이어진 해안선을 따라 눈앞으로 펼쳐진 바닷길. 위로 올라가면 한강이 뻗어 흐르고 아래로 내려가면 바다가 나오는 대곶면 신안리 212-2번지 일대는 신석기 시대 주거지가 무더기로 발굴된 곳이다.
4차 발굴이 끝난 이곳은 다시 흙으로 덮인 후 보존되고 있어 눈으로 유적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넓어 보이지 않는 이 구릉 내에 지금까지 40기가 넘는 신석기 주거지가 드러났다는 것은 곧 신석기 사람들이 이곳에 집단으로 모여 살았음을 증명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사시대는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 즉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시대를 말한다. 당시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사용했던 도구에 의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로 분류되는데, 김포 신안리 유적은 신석기 전기~중기(B.C 3700~3400) 시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의 발굴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 2019년으로, 이후 2022년까지 모두 3차례에 걸친 발굴조사가 이뤄졌다. 1~3차에서는 수혈주거지(구덩이 형태) 35기가 발굴됐고, 주거지 내부에서 불탄 기둥과 노지, 기둥구멍 등이 확인됐다. 또 빗살무늬토기와 갈돌, 갈판, 지석 등 대표 유물들도 출토됐다.
이번 4차 조사지역 내에서는 총 8기(1기 중복)가 추가로 확인됐다. 이로써 신안리 유적에서 발견된 주거지는 모두 42기가 됐다. 발견된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대부분 방형으로, 내부시설로는 중앙에 있는 노지, 4주식 기둥, 저장공, 출입시설, 단시설 등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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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조사에서 나온 평저토기의 모습. /김포시 제공 |
특히 형태를 다 갖춘 빗살무늬토기들도 다수 나왔으며, 바닥이 뾰족하지 않고 평평한 평저토기가 처음으로 발굴됐다. 이 시대 평저토기의 정확한 쓰임새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는데, 이번 조사 중 주거지 바닥에서 토기가 발견되며 용도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잘 갈아서 만든 석촉도 함께 나왔다. 다만 집들이 해안가에 위치해 있음에도 조개껍데기나 생선 뼈와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발굴된 주거지들은 아무렇게나 지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사를 맡은 경강문화재연구원 조인규 학예연구실장은 "면적이 넓은 편은 아니지만, 42기가 집중적으로 모여 훼손되지 않은 채로 나타났다"며 "구릉의 등고선을 따라 집들이 자리해 있어 계획적으로 지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입구의 방향이 조금씩 다르게 나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의 동선도 유추해 볼 수 있다"면서 "발굴 지역을 점차 확대해 나갈수록 단순한 주거시설의 유무를 넘어 신석기 사람들의 삶의 방식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덧붙였다.
김포시는 주거지가 확장되는 양상을 추측해 봤을 때 추가 조사가 이뤄지면 전국 최대 규모의 신석기 주거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신안리 신석기 유적을 지역에서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던 가장 오래된 곳으로 보고 연구와 조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연말에는 유적과 관련한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유적을 보호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동시에 사적으로 지정되도록 하기 위한 작업에도 착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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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