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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종이빨대 포기로 땅에 떨어진 정책 신뢰

입력 2023-12-18 19:38 수정 2024-01-17 13:41

정부가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치를 철회하고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와 젓는 막대 사용 금지에 대해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을 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정부는 고물가·고금리 상황에서 소상공인 부담을 고려했다고 설명했지만, 여전히 대안 없이 일회용품 퇴출 방침을 철회한 방식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회용품으로 인한 환경 오염을 막겠다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한다는 사실과 별도로 정부 정책의 신뢰도 또한 큰 타격을 받은 것이다. 경제상황에 따라 쉽사리 바뀔 수 있는 것이라면 정부 정책에 대해 국민들이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

지난 2003년에도 식당 등에서의 일회용 종이컵 사용 금지 조치가 도입됐다가,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 6월 사라졌다. 2019년 11월 다시 등장했던 것이 현 정부에 들어 다시 철회되기를 반복했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환경정책은 여러 이유를 들어 방향을 바꾸기 일쑤였다.

당장 정부 정책을 믿고 시작한 종이 빨대 제조업체는 폐업 위기에 직면했다. 한 업체 대표는 "시장이 완전히 붕괴했다"는 말로 지금 종이 빨대 업체의 상황을 설명했다. 정부 정책과 전 세계적인 흐름을 믿고 빚을 내가며 설비를 투자하고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폐업 위기를 맞았다. 업체들끼리 공동판매를 시작하는 등 자구책을 찾고 있지만, 종이 빨대는 플라스틱 빨대에 비해 높은 가격과 낮은 제품 만족도로 인해 기존 시장에서 활로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정부가 위한다는 소상공인들 역시 정책을 믿고 미리 준비한 쪽과 그렇지 않은 곳의 표정이 엇갈린다. 1.5배나 비싼 가격으로 종이 빨대를 미리 준비한 곳이 상대적으로 부담을 더 지게 됐으니, 부담은 줄었더라도 정책에 대한 신뢰를 갖긴 힘들어 보인다.



환경 정책을 수립하고 철회하는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되다 보니,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소상공인 등의 표심을 겨냥한 선심성 정책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량 감축 정책이 국정과제로 꼽혀 온 사안인데도, 소상공인의 표심을 노리고 스스로 설정한 방향조차 내팽개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정부는 이번 철회 조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정책 신뢰를 회복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정책 교정에 착수해야 한다. 친환경과 경제성 사이에서 국민들이 공감할만한 대안을 만들어야만 '정부정책을 신뢰하면 손해 본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교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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