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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들어가는 인천 학교 조리실무사] 좁은 공간 발암물질 '무방비'… "폐암 걸릴라" 피어나는 공포

변민철
변민철 기자 bmc0502@kyeongin.com
입력 2023-12-28 19:14 수정 2024-01-09 13:55

식재료 볶고 튀기며 연기로 한가득
환기시설 노후 '조리흄' 제거 역부족
초중교 등 494곳중 기준 충족 4곳뿐
노동강도·고온다습환경 건강 위협
"설비 늦을수록 더 악화될것"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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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한 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가 조리기구에서 나오는 자욱한 수증기 속에서 학생들의 점심밥을 준비하고 있다. 2023.12.18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나도 폐암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크죠…."

비좁은 학교 급식실 내 조리 공간이 '조리 흄(Fume)'이라 불리는 희뿌연 연기로 가득 찼다. 식재료를 볶고, 튀기고, 굽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리 흄에는 각종 발암물질이 포함돼 있다. 환기시설 일부는 고장이 나 작동하지 않았다. 조리실무사들은 얇은 마스크 1장에 의지해 20㎡도 채 안 되는 좁은 조리실을 오가며 전교생 1천여 명의 점심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는 조리실무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확인하기 위해 이달 18일 오전 인천 한 학교를 찾았다. 이날 점심 메뉴는 볶음류와 튀김류 등이었다. 조리실무사 9명은 쉴 틈 없이 기름에 음식을 볶고 튀겼다. 조리실 주변은 금세 연기로 채워졌다. 밖은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혹한의 날씨였지만, 조리실은 음식 조리로 덥고 습해져 이들의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조리실에서 발생한 조리 흄에 조리실무사들은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환기시설 4대 중 1대는 고장 났다. 나머지 3대는 10년 이상 사용한 노후 시설로 조리실의 가득한 연기와 냄새를 없애기에는 역부족인 듯했다.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환경에서는 조리 흄에 더 쉽게 노출돼 폐 질환 등 각종 질병에 걸릴 수 있다.

이 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는 8년 차 조리실무사 강연수(40·가명)씨는 "우리 급식실에서도 폐 결절 소견을 받은 동료가 1명 있다. 발암물질 사이에서 일하니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 '학교 급식조리실 환기설비 설치 가이드'를 만들어 0.7m/s 이상 속도의 환기시설을 갖추도록 했다.

그러나 이듬해 인천시교육청이 인천지역 초등·중등학교와 산하 기관 등 49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곳만 이 기준을 충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인천시교육청은 지난 6월 500여 개 학교의 모든 환기시설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올해 겨울방학에 들어서야 겨우 3개 학교에서 공사가 시작될 정도로 실행이 더디다. 애초 내년까지 모든 학교에서 착공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2026년 준공하는 것으로 일정이 미뤄졌다.

강도 높은 노동과 고온다습한 환경도 조리실무사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인천에서 일하는 또 다른 조리실무사는 "조리 공간 바닥에는 항상 물기가 있고, 연기와 열기 때문에 제대로 숨쉬기 힘들다"며 "여름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데다 위생상 착용한 마스크 때문에 더 힘들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9월 인천 부평구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던 조리실무사가 쓰러져 치료를 받았으나 8일 만에 숨졌다. 사인은 심근경색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인천지부는 강도 높은 노동과 고온다습한 환경, 음식 조리 시 발생하는 오염물질 등 열악한 근무 환경을 사망 원인으로 지목했다.

이상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인천지부 정책국장은 "폐암 확진자뿐 아니라 현재 폐암 의심 소견자 등 건강 이상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공사가 늦어질수록 조리실무사들의 건강은 더 악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노동강도를 낮추기 위한 인력 충원도 절실하다"며 "급식실 종사자 1인당 식수 인원을 줄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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