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윤상철 칼럼] '정치테러?' 유감…

입력 2024-01-29 19:54

동기·성격 명확한 20세기 정치테러
민주화 이행은 맨손저항 피지배 세력
군대 무장한 지배세력과 평화 서약
점점 사익 추구하며 혐오로 파편화
국가 기능상실, 그저 감정투쟁 난무


윤상철_-_기명칼럼필진.jpg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야당 대표와 여당 국회의원 등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행위의 동기와 그 정치적 배후가 아직 명확하지는 않지만, 정치인을 대상으로 분노 혹은 혐오가 표출되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나 야당대표 피습 사건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미한 행위라는 이유로, 여당 의원 피습사건은 나이 어린 청소년의 행위라는 이유로 정치테러로 선뜻 인식되지 않는다. 지난 2006년에도 야당대표에 대한 피습사건이 있었지만 당시에도 범인의 일탈적 자기과시욕에 기인한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정치테러 혹은 정치폭력의 역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방정국에서 여운형뿐만 아니라 송진우, 장덕수 등 민족지도자들의 암살 역시 신설 국가의 미래를 둘러싼 정치적 갈등에서 발생한 정치테러였다. 비민주적 권위주의시대였던 1950년대에는 폭력조직들이 개헌에 반대한 야당의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었고 1976년도의 '신민당 전당대회 각목난동사건',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 등에서 보이듯 정권이나 야당 내부에서 사주한 정치테러 등이 빈발했다. 이렇듯 정치테러는 정치적 반대세력의 정치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행위라는 점에서 비민주적 체제 안에서 발생한 사건이긴 하지만 그 동기와 성격 및 목표 등이 명확하게 드러났다.

민주화 이행 이후의 상황은 크게 다르다.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에서는 정치 자체가 경제영역 안에서 발생하는 부의 불평등 심화에 따른 빈곤과 양극화가 적나라한 폭력적 분배갈등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막기 위한 장치로서 기능한다. 특히 민주주의체제는 개인에게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고 정치적 토론·논쟁을 통한 합의체제로 작동한다.



이른바 '제3의 물결' 민주화에 올라탄 신생 민주주의체제는 대부분 제도적 폭력인 군대와 경찰로 무장한 권위주의적 지배세력과 맨손으로 저항하는 피지배 사회정치세력간의 합의로 이루어졌다. 인권과 자유, 그리고 주기적 선거를 통한 권력구성에 합의하면서 지배세력은 제도적 폭력의 사용을 자제하고, 피지배세력은 거리의 투쟁을 삼가는 합의를 통해 민주화 이행이 이뤄졌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세력들이 어떤 형태의 폭력도 사용하지 않겠다는 동의이자 서약이었다. 이후에는 민주주의체제를 구성하는 정치세력들간의 상호관용과 집권세력의 제도적 자제가 이러한 합의를 유지시킬 수 있었다. 보다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체제는 자기 희생과 양보라는 규범이 자리잡아야 비로소 존속가능하게 된다.

민주화 이행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는 이러한 민주적 심화의 길을 갔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세력들은 국가권력의 독식과 패권적 이익분배를 추구하였다. 국가권력을 공익을 추구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제도로 만들기보다는 독점과 권력남용을 통한 사익추구의 장으로 만들었다. 사회세력들도 국가를 법과 제도를 매개로 한 이익의 공정한 분배체계로 보기보다 연고와 사회관계를 통한 이익분배기제로 인식했다. 시민사회단체나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익집단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정치의 장으로 경제적 이익의 격렬한 투쟁이 고스란히 이전되었다. 이익갈등의 제도화된 비폭력적인 조정기제를 만들기보다는 폭력적인 주먹과 이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이 되었다. 자기희생과 양보에 기초하여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체제는 스스로 정의를 독점하고 상대를 적으로 혐오하는 세력들에 의해 파편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더 이상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거나 민주주의 규범을 존경하지 않게 되었다. 자기편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언제라도 적의를 드러내며, 국가와 민주주의를 대리하는 정치인들은 그러한 정서표출의 출구가 된다. 포퓰리즘이 지속되면서 그러한 표출은 정제되지도 조정되지도 않고 수용되기 마련이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폭력적 공격이기에 정치테러라 부르기 쉽지만, 공격을 감행한 이들의 특성이나 동기를 보건대 정치적 이념갈등으로 보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렇다고 체제변경을 둘러싼 갈등의 경계에 서 있지도 않은 이상한 분노의 표출일 뿐이다. 국가와 정치가 기능을 상실하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적나라한 감정투쟁이 난무할 뿐이다.

/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