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內戰)의 확전(擴戰), 혐오만 남겼다 ③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와 장애아동을 제자로 둔 특수교사 ‘사이’는 일반의 사제(師弟)의 정과는 조금 다르다.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한 특수교육 현장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절실하게 적용되는 곳이다. 말 그대로, 특수함을 지닌 아동을 온전하게 키우기 위해 부모와 교사가 ‘원팀’이 된다. 아니, 돼야 한다. 서로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게 특수교육의 현실이다. 그래서 이들 사이를 설명할 때 ‘신뢰’는 관계를 공고히 하는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다.
이른바 ‘주호민 사건’으로 불리는 용인 특수아동·특수교사 간 정서적 학대 공방이 치열해질 때마다 강한 의문이 들었다. 신뢰를 기반으로, 그간 원팀이었을 부모와 교사. 이들이 치르는 지금의 여론전은 실상을 안다면 잔혹한 ‘내전(內戰)’이다. 우리는 이들의 내전을 깊숙히 파고들었다. 이들은 왜 스승의 은혜를 배신한 부모와 제자에게 모진 말을 뱉은 매정한 스승이 돼버렸을까. 이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다양한 이들을 취재했고, 이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교사와 부모의 입장에서 재구성했다.
고소 그후, 내전(內戰)은 ‘확전(擴戰)’됐다
#장애아동 부모와 특수교사 전쟁으로
수사·사법기관 넘어가며 확대 재생산
‘내전’ 닮은 공방 미디어에 고스란히
2023년 7월13일 수원지방법원 403호. 혜정씨 아동학대 혐의 사건의 첫 증인신문 기일이었다. 이땐 세간에 사건이 알려지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방청석이 가득 찼다. 대부분 민수와 같은 반 장애아동 부모들, 그리고 혜정씨 지인들이다. 혜정씨는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윽고 민수 엄마가 증인석에 등장했다. 청중은 웅성였다. 판사는 덤덤히 신문을 이어갔다. 주고받는 질문과 답을 들으며 곳곳서 짜증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1시간30분 내내 긴장감이 감돌았다. 신문이 끝나고 하나둘씩 방청석을 떠나며 민수엄마를 향해 말했다. “아이고 참, 저렇게 착한 선생님이 학대는 무슨”, “정말 낯짝도 두껍네 두꺼워”.
2023년 12월18일 수원지방법원 403호. 혜정씨 사건의 마지막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사건이 기사화되고 논란이 컸던 터라 구름 청중이 몰렸다. 청중 일부는 법정 벽면에 찰싹 붙어 참관해야 할 정도였다. 이번 재판에도 같은반 장애아동 학부모들이 왔다. 그리고 이번엔 장애인 부모단체들과 교사노동조합 관계자들까지 모였다. “당시 교사 발언이 아이 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했습니다.” 용인시 아동학대 담당 공무원이 증언하자 방청석에서는 흐느낌과 헛웃음이 섞여나왔다. 혜정씨 변호사가 아동학대가 아님을 강조하자 일부에서 “그게 왜 아동학대가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이다 제지를 받기도 했다. 재판이 끝나고, 한데 모였던 청중은 정확히 두 방향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각각 반대쪽 출구로 향했다.
수사·사법기관으로 넘어간 민수 부모와 혜정씨의 갈등은 다양한 양상으로 확대됐다. 같은반 장애아동 학부모끼리 갈등으로 번졌다 기사화 이후 여론이 뜨거워지면서는 장애아동학부모와 특수교사의 갈등으로 판이 커졌다. 서로를 갉아먹는 이들의 공방은 미디어에 그대로 보도됐고, 대중에 확대·재생산됐다. 혜정씨와 민수부모의 전쟁이 혜정씨의 특수반 장애아동 부모들과 민수부모의 전쟁으로 확전됐고 이제는 장애아동 부모와 특수교사의 전쟁으로 전선이 확대됐다. 전쟁은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동지와 싸우는 ‘내전’이 더 잔인하다.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공감하며, 동지처럼 손 잡고 가던 이들은 왜 서로를 찌르는 싸움을 시작했을까. 고소 이후 사건이 벌어졌던 용인 A 초등학교로 다시 돌아간다.
어쩌다 확전됐나
#2022년 9월 혜정씨에 고소장 접수
유일한 특수교사 부재에 교육은 붕괴
사건 방치하듯 특수반도 방치한 당국
3개 학기 ‘7명’ 근무 줄퇴사 이어진듯
특수반 부모들 좌절… 민수 부모 표적
연대관계 된 혜정씨, ‘로또 같은 확률’
2022년 9월 고소장이 접수된 혜정씨는 두 달 뒤 첫 경찰 조사를 받는다. 이후 12월 정서적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 12월27일 법원에 공소장을 접수한다. 정식 재판에 넘겨진 혜정씨는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2023년 1월 경기도교육청의 직위해제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혜정씨는 교육청 공식 처분 전부터 자리를 비웠다. 민수부모의 고소이후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이 커졌고 2022년 9월 23일 결국 병가로 휴직을 했다. 교내 유일한 특수교사였던 혜정씨가 빠지자 특수반은 순식간에 붕괴되기 시작했다. 혜정씨를 대체할 특수교사를 구해 신속하게 빈틈을 메우고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어야 할 교육당국은 학부모와 특수교사의 고소고발이 일어난 사건을 방관했던 것 처럼 특수반도 방치했다.
특수교사는 통상 학기 초마다 한 학기 운영을 두고 모든 학생의 부모를 개별로 만나 상담한다. 이때 개별화교육지원팀협의회가 등장하는데, 이 협의회를 통해 아이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개별화교육계획을 수립하고 한학기를 어떻게 보낼지 논의한다. 그만큼 아이 성장을 위해 교사와 학부모가 철저하게 사전에 준비하고 협의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특수교육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를 지휘하던 특수교사 혜정씨가 중도하차한 셈이다.
용인 A초등학교 특수반은 혜정씨 부재 이후 3번의 학기가 흐르는 동안 정교사인 특수교사를 배정받지 못했다. 정규교사였던 혜정씨 자리에 계약직 교사로만 충원됐다. 특수교사, 교육청, 장애아동부모 등 다양한 취재를 종합해보면 혜정씨가 휴직한 후 A초교에 배정된 특수교사는 1년4개월 동안 ‘7명’이 거쳐 갔다. 교사 1명당 2.2개월씩 근무한 셈이다. 이마저도 2022년 2학기 동안 혜정씨 휴직 직후 이후 5명이, 2023년 1·2학기에는 각각 다른 기간제 교사가 특수반을 맡았다. 물론 기간제 교사도 1년 이상 연속적으로 업무를 맡을 수 있지만, 중도에 갑자기 투입돼 장애아동과 관계를 맺어야 했고, 교내외의 어수선한 상황에 부담을 느껴 퇴직이 이어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반복된 교사 교체로 피해는 고스란히 장애아동에게 돌아갔다. 하물며 일반학급도 담임의 중도 교체는 파급력이 큰 사안이다. 특수반은 교사와 학생, 나아가 교사와 부모의 안정적인 관계가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수교사의 연속성 있는 관리가 없다면 장애아동이 적시에 필요한 처치와 눈높이에 맞는 교육을 받기 어렵게 되고, 특히나 1대1로 아동의 특성을 면밀히 파악해야 하는 만큼 짧은 기간 동안 전문적인 교육을 받기는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방학 기간에도 발달 단계가 잠시 멈추거나 성장이 더뎌지는 경향도 있는데, 당시 학기 중에서마저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면 직접적으로 재단할수는 없지만 분명 발달단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큽니다.”
- 익명을 요구한 특수교육전공 교수
특수반 부모들은 심하게 동요했다. 부모들에게 혜정씨는 ‘귀인’이었다. 지난 2020년 혜정씨는 특수교실조차 없던 A초교에 발령 받았고 직접 특수반 설립을 주도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민수 부모는 물론 다른 부모들과도 지속적으로 긴밀하게 소통했다. 부모들에겐 누구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교사였다. 하루 아침에 귀인을 잃을 위기에 처한 부모들은 민수 부모에게 표적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형사고소로 갈등이 번지게 된 배경에 학교관리자와 교육청의 방관, 교육당국의 시스템 부재가 있었지만, 이를 알 수도 없었고 알아손 치더라도 늘 약자였던 부모들은 민수부모를 원망하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교사와 부모의 갈등은 부모 사이의 내전으로 번졌다. 취재진이 만난 장애아동 부모들은 이같은 사례가 생각보다 흔하다고 씁쓸해했다. 특수교사 한 명을 두고 부모들이 서로 반목하는 상황이 적잖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학교·교사마다 처우가 제각각인 특수교육 현실에서 혜정씨처럼 협력적 관계를 맺어 온 특수교사를 찾는 것은 부모들에겐 마치 ‘로또 당첨’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특수교사가 우리 딸을 비롯해 특수반 아이들에게 폭언·폭행을 일삼아 온 사실을 동료 교사의 폭로로 알게 됐고 결국 아동학대로 고소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일부 부모들은 참여하지 않고 오히려 교사를 도왔어요. 본인 자녀들에겐 그래도 좋은 교사였고 또 이렇게 교육받을 기회를 뺏길까 하는 걱정이죠.”
“오죽하면 부모들끼리 그러겠어요. 특수교사 한 분 한 분이 귀해서 입장이 달라지는 게 큰 틀에서는 이해는 되죠. 자기 아이가 당한 것도 아닌데, 자기 아이를 맘 편히 맡길 특수교사분이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 경기지역 지적장애 3급 고등학생 딸을 둔 엄마(50대)
방치된 교실, 중재 없는 다툼…남은 건 혐오 뿐
#임태희 교육감에 유감 표한 민수 부모
사건 발생, 고소 진행, 법정 출석 단계
학교, 교육지원청, 교육청의 몫 재조명
사건 2년여간 두고보던 경기도교육청
혜정씨 복직 개입… ‘피고인 신분’ 한계
사건이 기사화된 이후 여론의 비난이 커지자 민수 부모는 ‘고소한 행위’에 대해선 책임을 통감한다며 대중에 머리를 숙였다. 동시에 교육당국을 향해 유감을 표하며 처절할 만큼 제도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일관되게 말하고 있다.
“타인의 ‘밥줄’을 자르는 칼을 너무 쉽게 휘둘렀다는 비난을 많이 보았습니다. 지금에야 너무나 가슴 아프게 받아들입니다. 이 제도를 이용할 때 저는 미처 거기까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제 부덕의 소치임은 분명합니다.” 2023.8.2.
“임태희 경기도교육감님. (중략) 개별사건, 이 재판을 보기보다는 일이 일어난 학교가 지금 15개월 동안 교사가 일곱 번 교체된 문제를 좀 살펴봐 주시고 특수교사가 좀 원활히 수급될 수 있게 제발 좀 그런 것들부터 좀 부탁드립니다. 진짜 부탁드립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2024.2.1.
- 민수 부모 SNS 및 유튜브 방송 中
다시 교육당국 책임을 되짚을 때다. 1심 선고 직후 민수 부모는 왜 가장 먼저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에 유감을 표했을까. 사건이 발생하고 고소가 진행되고 법정에 선 이후에도 학교와 교육지원청, 교육청 차원에서 수습과 제도개선은 왜 우선순위가 아니었을까.
정규교사 혜정씨의 빈 자리는, 장기간 안정적으로 맡을 수 있는 정규직 특수교사가 충원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조치였다. 그러나 장기 휴직이었던 2022년 2학기와 직위해제 상태였던 2023년 1학기는 혜정씨가 정원에 포함된 상태였기에 다른 정규교사가 임용될 수 없었다. 때문에 A초교와 용인교육지원청은 기간제 교사 채용을 통한 충원이 절차상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용인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제도적 배경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조치하려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경기도교육청은 일선 초교 인사업무는 관할 교육지원청 소관이라는 이유로 한 발 물러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이들의 소송전이 일부 매체 보도로 대중에 알려졌다. 여론은 크게 동요했다. 2년여를 잠자코 있던 경기도교육청은 사건 최초보도 이후 5일 만에 전격 입장을 발표한다.
“직위 해제된 경기도 한 초등학교 특수교육 선생님을 내일(8월 1일) 자로 복직시키기로 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도교육청 특수교육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선생님들이 더 이상 혼자 대응하지 않도록 교육청이 기관 차원에서 대응하겠습니다.”
-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SNS 中. 2023.7.31.
형사고소 이후 10개월여 지난 시점에 경기도교육청의 첫 공식 개입은 혜정씨의 전격 복직이었다. 교권보호의 관점에서 혜정씨의 복직결정은 충분히 환영받을만 하다. ‘특수교육 시스템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걱정도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정작 시스템이 붕괴된 A초교 특수교육 시스템에 대해선 언급도 없고 달라진 것이 없다.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는 혜정씨가 곧바로 교정으로 돌아오기 어렵고, 재판을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병가를 내 휴직할 수 밖에 없었다. 혜정씨 없는 A초교 특수반은 2023년 2학기에도 새로운 기간제교사로 그대로 운영됐고 장애아동이 처한 상황도 변함 없었다.
대신 경기도교육청은 보다 쉬운 길을 택한 듯 하다. 민수 부모와 혜정씨의 내전에서 ‘불법 녹음 규탄’ 이라는 키워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혜정씨 변호인으로 선임된 경기도교육청 고문변호사의 변호 과정과 기자회견, 그리고 교육감의 SNS를 통해서다. 사건 초기 중재 책임이 있었던 학교 관리자의 방기, 장애아동과 부모에 상처만을 남겼던 학교폭력 사안 처리 경과, 아동학대 고소를 접수하는 과정에서 교육당국의 안내, 부모 간 내분과 확전을 야기한 특수반 상황을 두고 자기성찰과 개선의 의지는 언급된 바 없다. 다만 취재진의 물음에 경기도교육청 특수교육과 관계자는 “교육청 차원에서도 열악한 특수교육 시스템의 현실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재판 진행 상황과 별개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특수교육 현장을 보완할 대책과 3개년 계획 등을 마련해 지난해 말부터 발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도 집에서 케어 못해서 학교에 맡겼으면 죄인 된 마음으로 감사해야지 녹음기 집어넣고 아동학대로 고소를 해? 감히 민수 부모에게 묻고싶다. 입장을 바꾸어 봤을때 당신은 얼마나 잘 할 수 있을까? 호의를 권리로 착각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바지 내린거 한번 봐주면 아동학대 해도 됨? 어이가 없네. 그리고 여론전해서 남 인생 개박살 내놓고 자기는 일 계속하고 싶다는건 대체 무슨 심보냐?”
- 사건 관련 기사 댓글 中 일부 발췌
2024년 2월. 정기인사로 올해 1학기부터 A초교에는 새로 정규직 특수교사가 배치된다. A초교를 떠나게 된 혜정씨와 전학조차 할수 없어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민수와 민수부모. 교실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1심 결과에 항소하며 법정에서 다툼을 이어갈 전망이다. 주요 쟁점은 ‘녹음의 불법성’이다. 교실 안의 녹음을 용인할 때 교실은 어떤 미래를 맞을지 고민과 걱정이 많다. 서로 깨지고 아프더라도 반드시 치열하게 다퉈야 할 쟁점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녹음기를 넣지 않아도 되는 교실은 왜 고민하지 않을까. 이들의 내전은 정말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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