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가기
경인일보

[영상+] 안산 지역사회에 숙제 안긴 '두 개의 화랑유원지'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3)]

공지영·김동한·목은수
공지영·김동한·목은수 기자 dong@kyeongin.com
입력 2024-04-16 20:44 수정 2024-04-24 14:33

추억의 화랑유원지… 추모의 화랑유원지…

시민과 함께 쉴 곳은 어디… 세월은 기억의 바다를 건너는중 

 

 

상이군경이 일군 땅, 도심내 휴식처로
1998년부터 공원화, 각종 시설 들어서
오토캠핑·바비큐 파티 등 저마다 추억

세월호 비극후… 정부합동분향소 설치
4년간 73만여명 조문… 공간 성격 변화
일부 시민 "유원지 뺏겼다" 불편 호소
'생명안전공원' 조성 결정에 갈등 고조

"일상속에서 안전한 세상 함께 꿈꾸길"
설치 반대 이웃 설득 이어가는 유가족
"우리 장례문화 달라지는 계기 될수도"






60대 중반의 형철(가명)씨는 1983년 안산에 정착했다. 막 조성되기 시작한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 일자리가 많다는 소식을 듣고 군 제대 후 무작정 안산으로 왔다. 공장일은 고됐다. 주 6일 근무는 기본이었고 철야근무도 종종 있었다.

그런 형철씨에게 유일한 낙은 쉬는 날, 화랑유원지에 놀러가는 것이다. 일주일의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었다. 회색빛 공장만 가득한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놀거리와 볼거리를 주는 곳.

일주일에 딱 한번 쉬는 그 하루, 가족과 함께 화랑유원지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집에서 싸온 음식을 먹거나 화랑호에서 낚시를 하며 휴일을 보냈다. 형철씨의 고된 청춘을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03_21.jpg
화랑유원지 해바라가 꽃밭과 넝쿨터널에서 일상을 즐긴 시민들. /경인일보DB

■ 안산을 닮은, 시민의 휴식처 화랑유원지


도심 한복판에 유원지가 있는 도시는 안산이 유일무이하다. 화랑유원지가 처음부터 유원지는 아니었다. 1956년 6·25 참전 상이군경 20여명이 안산시로 이주해 땅을 조성한 게 시작이었다. 당시엔 '화랑농장', '화랑저수지', '화랑낚시터'로 불렸다. 하지만 1986년 반월국가산단 배후도시 안산이 시로 승격되면서 화랑유원지로 불리게 됐다.

지금의 공원 형태로 조성되기 시작한 건 1998년이다. 1980~90년대부터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늘어나자 안산시 차원에서도 시민들이 맘껏 쉬고, 체육활동을 하고, 바비큐 파티를 할 규모를 가진 공원이 필요했다. 당시만 해도 안산이 대체로 논밭이거나 황무지였고, 고잔신도시는 개발 중인 단계였다.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찾아 휴식을 취하고 있어, 조성된 곳이 화랑유원지였다. 안산시도 이런 필요를 느꼈고 화랑유원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인라인스케이트장, 족구장, 농구장, 게이트볼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과 문화시설 등이 꾸려졌다. 경기도미술관 등 대형 문화시설들도 조성돼있다.

국가산단을 품고 있는 안산은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수였던 만큼 그 역사를 잘 보여주는 산업역사박물관도 있다. 아시아웨이는 외국인노동자와 이주가정이 많은 도시를 상징하는 조형물이다. 그래서 규모도 상당하다. 면적만 63만2천107㎡에 달하는데, 축구장 88개 크기다.

03_3.jpg
화랑유원지 해바라가 꽃밭과 넝쿨터널에서 일상을 즐긴 시민들. /경인일보DB

화랑유원지는 안산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품고 있는 공간이다. 세대를 불문하고 안산 시민들에겐 '어머니의 품'같은 공간이다.

안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김동현(28)씨는 어릴 때부터 화랑유원지를 찾았다. 초등학교 저학년엔 봄 소풍을, 6학년 땐 졸업사진을 찍으러 왔다. 본격적인 수험생이 되기 전인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엔, 화랑유원지 내 단원각에서 신년 타종행사를 보며 '대학에 잘 붙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지금도 동현씨에게 화랑유원지는 종종 찾는 유희의 공간이다. 유원지 내 오토캠핑장을 찾아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동현씨에게 화랑유원지는 가장 흔한 추억이다.

형철씨와 동현씨의 추억만이 아니다. 안산시민이라면 누구나 화랑유원지에 대한 소중한 추억 하나쯤은 있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오토캠핑장에 바비큐 파티를 하러 간 추억, 학창 시절 졸업사진을 찍으러 반 친구들과 소풍간 추억, 연인과 함께 흐드러진 화랑호 벚꽃 길을 함께 걷던 추억, 경기도미술관 전시를 보러 간 추억, 시민들과 함께 단원각에서 연말 타종행사에 참여한 추억.

화랑유원지는 그런 안산시민의 삶을 토닥이며 세월을 보내왔다. 안산시민들은 그래서 화랑유원지를 떠올리면 따뜻한 추억들이 생각난다. 2014년 4월이 오기 전까지는.

03_4.jpg
지난 2009년 화랑유원지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안산 愛 페스티벌'에서 시민들이 공연을 보며 가을밤의 정취를 만끽하고 있다. /경인일보DB

■ 추모와 애도의 공간이 된 화랑유원지


2014년 4월 16일 이후 화랑유원지도 변했다. 안산 아이들의 비극적인 죽음은 화랑유원지를 변하게 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상의 모든 눈은 안산으로 쏠렸고 그 중에서도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는 안산 화랑유원지에 집중됐다. 전국적인 추모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안산으로 조문객이 몰렸다. 올림픽기념관에 설치된 임시 합동분향소는 인파를 감당하기 역부족이었다.

고심 끝에 정부는 같은 달 29일 규모가 큰 화랑유원지 제2주차장에 공식 합동분향소를 열었다. 전 국민에게 화랑유원지가 대표적인 세월호 참사 추모 공간으로 인식된 건 이때부터다.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는 2018년 5월 3일 철거될 때까지 1천463일동안 운영됐다. 개소 이후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73만8천446명에 달한다. 분향소가 들어서고 화랑유원지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각종 행사들이 열렸다.

매년 4월16일 열리는 기억식을 비롯해 세월호참사 행사가 열릴 때마다 안산시민보다 외지인이 더 많이 찾았다.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과 나비 형상의 조형물도 설치됐다.

03_5.jpg
4·16 생명안전공원이 조성될 예정인 화랑유원지 안산산업역사박물관 옆 부지에 공원 조성과 관련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세월호참사를 기점으로, 안산시민들에게 화랑유원지는 마음 편히 오는 공간이 되지 못했다. 가장 사랑하는 공간이 점점 낯설어졌다.

공원을 산책하고 아이들과 놀다가도 '웃어도 될까' 주춤하게 됐다고도 했다. 그래서 일부 주민들은 "화랑유원지를 뺏겼다"고 생각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9년 2월 4·16생명안전공원 부지가 화랑유원지로 결정되자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노골적으로 분노의 감정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봉안시설이 들어서면 납골당이 될 것", "사람 사는 곳에 납골당이 웬 말이냐", "화랑유원지까지 내줄 순 없다" 등의 반대의 이유였다.

화랑유원지 내에 4·16생명안전공원을 착공하기로 결정했을 땐 반발이 더욱 커졌다. 실제 올 하반기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지만, 아직도 기억식과 같이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반대 집회가 열린다.

03_6.jpg
노란 리본이 내걸린 화랑유원지 호수 산책길에서 시민들이 산책하고 있다.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16일 세월호 10주기 기억식이 열리는 현장에도 어김없이 반대집회가 열렸다.

화랑유원지 4·16생명안전공원 건립 반대 시위를 진행한 김대현 화랑지킴이 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추모 공원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어디든 지으라는 거다. 근데 안산시민의 편의시설인 화랑유원지는 아니지 않나"라며 "사람들 사는 곳에 봉안시설이 들어선다는 건 아직 우리 정서상 맞지 않다. 시민들이 아직은 공원 건립 진행 과정을 잘 몰라서 그렇지 실제 착공되기 시작하면 갈등이 터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03_7.jpg
16일 안산시청 앞에서 화랑유원지에 4·16생명안전공원을 건립하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는 모습. 2024.4.16 /김동한기자 dong@kyeongin.com

■ 참사도 안산의 역사, 화랑유원지가 품어야

조은정 학생 엄마 정화씨에게도 화랑유원지는 아이와의 행복했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다. 은정이가 뛰어놀았고 많이 웃었으며 좋아했던 공간이다. 정화씨는 그래서 꼭 화랑유원지에 4·16생명안전공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은정이도, 정화씨에게도 화랑유원지는 과거이고 현재다. 어머니의 품처럼 안아주는 곳이다.

은정이 친구들이, 가족들이, 그리고 세월호참사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사람들이 자주 오가길 바라서다. 죄책감을 가지라는 것도 아니고, 괴롭길 바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일상 속에서 아이들을 기억하고 그 죽음을 되새기면서 안전한 세상을 함께 고민하며 때론 마음의 쉼을 얻길 바란다. 그래야 희생자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는다.

유가족들도 시민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서운하고 속상하지만, 이해도 하고 있다. 안산이라는 울타리에서 함께 살던 이웃이기에 화랑유원지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랜 시간 묵묵히 반대를 견뎌내 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을 만나 설득하는 일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세월호
올해 하반기 착공될 4·16생명안전공원 조감도. /안산시 제공

정부자 4·16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사업부서장은 "4·16생명안전공원은 우리 장례문화를 달라지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산 자와 죽은 자가 분리돼 살았다. 그래서 일상 속에 죽음이 들어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며 추모를 그만두길 종용하는 것도 그러한 관습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멀리는 독일, 미국, 가깝게는 일본에서도 죽음을 경외시하지 않는다. 특히 대형 참사와 같이 기억해야 할 죽음에 대해서는 일상 속 추모를 선호한다. 그래서 접근성이 좋은, 도심 한가운데 추모공간을 만든다.

정 추모사업부서장은 "접근성이 좋은 화랑유원지에 모두가 와서 편히 산책하고 쉬고 안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우리 아이들 추억이 깃든 공간에서 청소년과 청년들이 꿈을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4·16생명안전공원은 칙칙한 공업 도시, 범죄 도시로 비쳐지는 안산의 이미지도 바꿀 수 있다. 도심 한복판에 생명과 안전, 희망을 말하는 공원이 조성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안산 일동에 20년째 거주하는 정은철(49) 협동조합 마실 이사장도 같은 생각이다. "세월호도 안산 역사의 일부예요. 화랑유원지에 4·16생명안전공원이 설립되면 안산이 세월호를 품게 되는 것이고, 산재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안산의 이미지도 바뀔 수 있습니다."

공업도시, 계획도시, 이주민의 도시 안산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의 도시가 됐다.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고 되돌릴 수 있다면 천번이고 되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세월호참사는 안산의 과거이고 현재다. 안산의 역사다.

/공지영·김동한·목은수기자 dong@kyeongin.com

2024041701000207300019799




# 키워드

경인 WIDE

디지털스페셜

디지털 스페셜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

더 많은 경기·인천 소식이 궁금하다면?

SNS에서도 경인일보를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