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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폭심지옆 공원서 평온한 일상… 원폭 상흔이 평화의 상징으로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5)]

고건·이영선
고건·이영선 기자 gogosing@kyeongin.com
입력 2024-04-21 20:42 수정 2024-04-22 15:20



해외에선 어떻게 참사를 기억하나-일본 히로시마


에도시대부터 번화한 곳, 한순간 폐허
정부 '특별법' 만들어 도시부흥 지원
잔디밭·느티나무 사이… 시민들 휴식
'순령' 희생자 위령비앞 관광객들 추모
강제동원 피해자 등 한국인 위령비도
기념공원 인근에 참상 알리는 미술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1)
지난 12일 방문한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 내에 있는 추모비에서 관광객들이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정부와 히로시마는 원폭 참사의 잔혹함을 알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 평화기념 공원을 지었다. 2024.4.12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의 참상을 알리는 원폭돔 너머에 있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엔 평온함만이 맴돌았다.

푸른 잔디밭과 느티나무들 사이로 고등학생 무리가 자전거 벨소리를 울리며 달리고, 시민들은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피크닉을 즐긴다.

지난 12일 찾은 평화기념공원엔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는 시민들과 희생된 영혼의 평화로운 휴식을 기리는 상징들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종이학을 두손 높이 들고 있는 어린이 동상. 두 남녀가 아이를 안고 기도하고 있는 기념비.

'순령'이라고 적힌 위령비 앞에서도 관광객들은 생수병을 올려두고 두손모아 기도하며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원폭이 투하됐을 때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에 모든 사람들이 물을 찾았다는 이유에서 사람들은 위령비 앞에 생수병을 올려둔다.

평화에 깃댄 공원은 시민의 염원, 지자체의 의지, 정부의 지원으로 일상 속의 추모공간이 된 동시에 도시 재건의 발판이 됐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2)
지난 12일 방문한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 내에 있는 추모비에서 관광객들이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정부와 히로시마는 원폭 참사의 잔혹함을 알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 평화기념 공원을 지었다. 2024.4.12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 도시 재건의 상징이 된 평화공원


1945년 8월 6일 8시 15분, 지금의 평화기념공원 위에서 원자폭탄이 폭발하고 히로시마 일대는 폐허가 됐다. 공원이 있는 자리는 에도 시대부터 1920년대까지 히로시마의 번화가였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49년 8월 6일 일본 정부는 히로시마평화기념도시건설법을 특별법으로 제정해 히로시마의 재건을 위해서 국가 예산을 투입했다. 특별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민투표를 무조건 진행해야 하는데 찬성이 90% 이상으로 도시 재건에 온 히로시마 시민의 염원이 담겨있었다.

당시 히로시마는 특별법으로 도시 재건을 꾀할 수밖에 없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학예사 코야마 료는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에 히로시마시에서 자체적으로 부흥도시계획을 추진했는데 재정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다. 특별법 없이는 추진이 안될 정도로 히로시마 현실이 안좋았다"며 "결국 히로시마시가 정부에 예산을 건의해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재정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시는 특별법에 포함된 도시 재건 계획을 기반으로 폭심지에서 가까운 위치에 공원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공원 설계를 위해서 145건의 응모를 받았다. 공모 결과 유명 건축가인 단게 겐조의 설계안이 선정돼 지금의 공원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평화기념자료관도 건설되고 평화를 품은 계획도시가 세워지면서 '평화도시'로 부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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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방문한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 공원 내에 있는 추모비에서 관광객들이 원폭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이후 정부와 히로시마는 원폭 참사의 잔혹함을 알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특별법을 제정해 평화기념 공원을 지었다. 2024.4.12 /고건기자 gogosing@kyeongin.com

■ 히로시마에 스며든 추모의 물결

평화기념공원 가운데에 있는 히로시마 원폭 사망자 위령비와 평화의 횃불, 원폭돔은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위치한다. 사람들은 위령비 앞에 줄지어 서 원폭돔을 바라보며 참상을 가슴에 새겼다.

평화기념공원엔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도 서 있다. 원폭 당시 히로시마엔 강제동원 노동자 등 약 14만명의 한국인이 거주하고 있었고, 5만명이 원폭 피해를 입었고 그중 3만명이 사망했다. 한국인들도 다녀간 듯, 한국 브랜드의 생수병도 그 곁을 지키고 있다.

원폭을 추모하는 공간은 평화기념공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원으로부터 1㎞ 떨어진 히로시마 미술관에도 원폭의 참상을 알리는 작품이 곳곳에 전시돼있다. 검붉은 화염으로 건물이 휘감겨진 피폭 후의 풍경, 원폭돔이 원폭 후의 버섯구름처럼 묘사된 작품은 관광객들을 생각에 잠기게 한다.

공원 인근 혼가와초등학교 안에 원폭 피해의 참상을 담은 만화 '맨발의겐' 기념관도 있다. 그곳엔 폭탄으로 황폐화된 히로시마 일대의 모형도 있는데 모래사장을 연상케 했다.

현재 히로시마는 평화기념공원을 중심으로 원폭의 흔적을 남긴채 완벽하게 재건됐다. 아울러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추모공간이 관광지가 되면서 관광도시로 성장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코야마 료 학예사는 "원폭 피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동시에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상징물은 히로시마에만 남게됐다"며 "히로시마의 원폭돔이 원형으로 보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국가와 시민의 열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히로시마/고건·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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