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 의지 담은 평화기념자료관
도시 파괴과정 3D 영상으로 생생히
유품에는 피해자·기부자 이름 알려
입구에 가장 최근 핵실험 날짜 표기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고 일본 국민들을 진정한 '치유'로 이끈 평화기념공원의 자료관은 원폭의 참상을 적극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2일 방문한 히로시마 평화기념 자료관. 2층에 마련된 히로시마 원폭 투하 현장 재현 3D 전시관을 관람객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 원자폭탄의 참상
2분 정도의 3D 영상에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한가운데 떨어진 원폭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는 과정을 CG로 합성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영상과 함께 전시관엔 폭발음과 피해자들의 비명들이 섞여 재생돼 그 파괴력과 잔혹함을 더욱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3D 전시관을 빠져나오면 원폭 투하로 폐허가 된 히로시마의 전경이 이어진다. 흑백에 폐허가 된 도시, 오직 철근만 남은 건물, 모두 불타버린 나무들. 이날 이어지는 사진들을 보는 관람객들은 사진을 촬영하거나 잡담을 하는 대신 숨죽이며 그 참상을 지켜봤다.
자료관 곳곳에는 '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됐는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한 소녀의 유품이 된 자전거와 더불어 누더기가 돼버린 피해자들의 옷가지, 그들이 착용한 장신구 등 원폭이 떨어진 날 일상을 보내던 히로시마 시민들의 실상이 그대로 보였다.
원폭의 피해는 하루아침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도 강력히 경고되고 있었다. 3층 전시관에는 원폭 투하 이후 피폭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자료들이 이어졌다. 인체가 방사능에 노출돼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긴 소년, 팔과 다리가 썩어가 온종일 누워 고통 속에 노출된 한 청년. 특히 피폭에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의 사진 다수가 미성년 어린이들이었기 때문에 관람하는 이들 중 일부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자료관에 방사능에 피폭된 사람들의 사진이 전시돼있다. 자료관은 1955년 개관해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가한 피해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시하고 있다.2024.04.12/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 반성·다짐의 공간으로 활용되는 자료관
자료관을 가득 메운 관람객 대부분은 미국, 유럽 등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과 적대적 관계였던 국적이다. 참사의 원인인 원자폭탄으로 무고하게 희생당한 시민들에 대한 사과와 반성 의미도 크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원폭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자료관 역시 추모 공간이기 때문이다. 자료관 곳곳엔 원폭으로 사망한 피해자들의 이름과 이들의 유품을 기부한 기부자들의 성명이 적혀 있었다. 특히 일본 내에서 '반핵'의 상징인 사사키 사다코의 전시도 발걸음이 모인다. 2살 때 피폭된 사다코는 10년 동안 백혈병에 고통받다 숨을 거뒀는데, 그가 남긴 고통에 대한 기록과 사진들이 숨김없이 공개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자료관 입구에는 히로시마 원폭이 떨어진 지 며칠이 지났고, 가장 최근 진행된 핵실험 일자가 적힌 종이와 시계가 걸려 있다. 히로시마 시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원폭 참사를 반복할 수 있는 핵실험을 진행한 국가에 항의서한을 전달하는 것인데, 지난 2019년 북한이 5차 핵실험을 진행할 당시에도 마쓰이 가즈미 시장이 북한에 "용서할 수 없다"는 비난과 함께 서한을 보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학예사인 코야마 료는 "자료관에는 특히 서양인들도 굉장히 많이 온다. 히로시마에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가 됐다는 의미도 있지만, 서양의 전쟁과 역사와도 연관성이 높기 때문"이라며 "원폭 피해 당시 생존자와 그 가족들, 피해자협의회 같은 당사자들도 많이 와서 원폭의 위험성 등에 대한 목소리를 많이 제기한다"고 말했다.
히로시마/고건·이영선기자 gogosing@kyeongin.com
※위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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