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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복(公僕)의 의미는 '노비' 아닌 '상호존중'

입력 2024-04-2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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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조 김포시청공무원노조 대변인
공무원을 영어로 'Civil Servant' 또는 'Government Employee'라고 한다. 정부의 행정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 정부에 의해 고용된 사람을 뜻한다.

여기서 쟁점이 될 만한 게 'Servant'의 의미다.

Servant는 1천200년경부터 사용된 servaunt에서 유래해 '개인 또는 가정에서 일하는 종이나 노예, 군주에게 봉사의 의무를 가진 사람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 영어권에서 공무원을 노예나 종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나라에선 공무원을 '공복(公僕)'이라 칭하기도 한다. 공복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 '국민의 심부름꾼이라는 뜻으로의 공무원을 말함'이라고 돼 있다. 그러나 단어 속 '복(僕)'의 의미가 '종'이나 '머슴'으로 해석되다 보니 아직도 과거 조선 시대의 '공노비'로 해석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듯하다.



민원처리과정에서 공무원을 향한 온갖 욕설과 하대, 폭력 등은 이러한 저급한 인식이 투영된 결과다. 얼마 전에도 김포시 9급 공무원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집중포화식 개인신상 공개와 비난, 온라인상에서의 수많은 욕설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비상식적 공격행위는 이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2018년 용인에서는 9급 여성 공무원이 난방비 지원문제로 시비를 걸던 민원인의 흉기에 세 차례 찔려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이 있었다. 2021년 포항에서는 택시감차사업을 빨리 끝내라고 무리하게 요구하던 민원인이 공무원에게 염산테러를 자행했고, 올해 1월 파주에서는 환경관련 민원인이 공무원의 머리를 쇠망치로 가격하는 사건이 있었다. 공무원을 하대하는 인식이 악성민원으로, 악성민원이 폭력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MZ세대 공무원들의 가치관도 달라졌다.

공무원 6천17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2022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서 '개인적 가치보다 공직의무를 중시 여겨 업무를 수행한다' 항목의 답변이 3.49(만점 5)로 전년(3.58)보다 크게 떨어졌다. 2022년 'MZ세대 공직가치인식조사'에서도 공무원 스스로 '공복'이라 여겼던 과거 가치관에 변화가 나타났다. MZ 공무원 120명중 83.3%가 "공무원도 민간기업 근로자와 동일하게 경제적 편익을 지향하는 직장인"이라 답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 변화에도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가 나에게 매우 중요하다'에 긍정적으로 답한 공무원들은 전 직급에서 부정적인 응답을 넘어섰다. 가치관은 달라졌지만, 공복으로서의 근본과 본분은 여전히 지키고 있다는 의미다.

'국민의 공복'이라는 의미를 잘못 해석한 악성민원인들로부터 공무원들이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례는 더 많아진 듯 보인다.

행안부에 따르면 민원인의 위법행위가 2018년 1만8천525건에서 2021년 5만1천883건으로 4년새 180% 폭증하였다. 공무원들이 2019~2023년 민원처리 과정에서 유발된 정신질환을 이유로 공무상 재해를 신청한 숫자는 1천131명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공무원에게 공복이라는 역할만 강조하며 희생을 당연시해온 결과다.

대한민국 헌법은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고 규정돼 있다.

크든 작든 권력을 쥐고 있는 공무원이 본분을 잊고 그 힘을 휘두르지 말기를, 그렇게 되는 순간 국민을 위한 봉사자가 아닌 주인이 됨을 경계하며 공평무사하게 국민을 위해 헌신하라는 의미일 게다. 공복이란 단어는 이처럼 '누군가에게 복종하거나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는 것'에 더 무게가 있다고 봐야 한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공무원이 건강해야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내 노예나 종이라고 여기는 순간 딱 그 정도의 서비스가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공복이란 말 속에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효조 김포시청공무원노조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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