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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엄미술관, 아오노 후미아키 개인전 '무지(無知)의 기억이 열리다'

구민주
구민주 기자 kumj@kyeongin.com
입력 2024-05-12 19:00 수정 2024-05-12 19:02

이질적인 듯 본질인 듯… 버려진 사물의 재탄생


옷 수선하듯, 구멍난 곳 메우듯 주변 활용
트럭·가구 조합… 인간 중심 탈피 시각 변화
설치·드로잉·오브제 등 50점 내달 8일까지

무지의 기억이 열리다
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오노 후미아키 개인전 '무지의 기억이 열리다'의 전시 작품.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미처 다 쓰이지 못한, 쓰임을 다한 사물. 버려진 사물의 재생과 복원으로 물성을 탐구하고 새생명을 불어넣는 작가 아오노 후미아키의 개인전 '무지(無知)의 기억이 열리다'가 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연 것은 이번이 두번째로, 초기작에서부터 최근 한국에서의 신작까지 총망라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물의 순환과 수리, 변용을 다룬다. 작가의 작업은 어떠한 형태와 장소로 표류하는 사물에서 이전 생활에 대한 기억이나 상실의 흔적을 떠올리게 하고, 잊고 있었던 혹은 알지 못했던 사물에 대한 기억이 열리게 한다.

작가에게 이러한 '복원'은 박물관에서 유물을 복원하는 것과는 다르다. 옷을 수선하듯, 또는 구멍 난 자리를 메우듯 최대한 주변을 활용하는 것에 무게를 둔다. 작품을 유심히 보면 서로 다른 성질과 모양을 가진 이질적 사물들이 마치 하나인 듯 자연스러우면서도 각각의 본질은 유지하고 있다.

그는 "연결한 부분들이 티가 나는데 너무 감쪽 같다면 가짜가 될 것"이라며 "하나로도 보이고, 두 개로도 보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작가의 작업세계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여러 변화를 겪는다. 그는 쓰나미로 폐기된 사물들을 활용해 변용된 형식의 규모있는 설치물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또 복원된 작품의 속에서 공간과 장면과 역사 등을 연결시켜 나갔다.

작품을 보다보면 나무 재료가 눈에 많이 띄는데, 작가는 "깊은 의미는 없다"면서도 "가공하기 쉬운 나무를 사서 쓰다 점차 나무로 된 가구를 쓰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쓰나미 이후 재료로서 가지는 나무의 의미가 더욱 커지게 됐다고도 덧붙였다.

1층 전시실에서 볼 수 있는 '간판'은 쓰나미 때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린 광고판을 부서진 가구와 결합한 작품이다. 재해로 쓰임을 잃은 광고판을 마치 기념비처럼 올려놓고 이를 바라보게 한다.

작품 '배'는 부서진 배와 책상, 서랍장 등이 함께 배치돼 있다. 버려진 배와 평범한 보통의 가구가 삐거덕거리면서도 서로가 의지하며 공존하고 있다. 책상에 놓여진 컵은 일상생활에서 온 하나의 부속품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놓였다.

전시실 2층에 자리한 작품 '트럭'은 작가가 가진 정체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동시에 사물에 대한 다양한 의미 부여와 상상력을 드러낸다. 망가진 트럭의 일부를 가구와 결합시킨 이 작품은 운송수단인 트럭이 사람에 의해 인위적으로 쓰임이 결정되고 정의 내려진 것에 반발하고 있다.

재해를 겪은 트럭의 파편과 가구들의 묘한 조합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난 시각의 변화를 주고자 했다. 작품의 뒤편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가구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 속에서도 작가가 녹여낸 해학과 유머를 느끼게 한다.

무지의 기억이 열리다1
작품 '트럭'.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전시실 곳곳에서 마주하는 한글이 쓰여진 사물은 작가가 지난해 화성지역을 방문해 수집한 폐기물로 만든 신작이다. 초코과자, 요구르트, 커피 등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버려진 사물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작품들은 우리에게 한층 더 가깝게 다가온다. 이밖에도 작가의 설치 및 드로잉, 오브제 작품 등 모두 50여 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사물의 복원은 사회가 요구하고 정해놓은 역할에서 벗어나 또 다른 새로움을 탄생시킨다. 그 속에서 다양한 의미를 바라보고 곱씹어보게 할 이번 전시는 6월 8일까지 이어진다.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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