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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대법원 양형위원회

윤인수
윤인수 논설실장 isyoon@kyeongin.com
입력 2024-05-12 19:39 수정 2024-05-1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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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조직법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목적을 "형(刑)을 정할 때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量刑)을 실현하기 위하여"로 규정해 놓았다. 하지만 재판 현실은 딴 판이다. 중대 범죄자의 가벼운 형량으로 국민의 상식을 거스르는 바람에, 법원의 정의구현은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됐다.

현행 사기죄 형량은 10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 벌금이다. 피해자가 다수인 범죄를 경합해도 최대 15년 징역형 선고만 가능하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주범 남모씨가 지난 2월 1심에서 15년 형을 받은 이유다. 남씨의 15년 형은 684가구 550억원의 사기 범죄 대가다. 청년 4명이 좌절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 680여 가구의 사기 피해로 추가 기소됐다. 그래도 15년이 선고형량 한계다. 이게 정의인가.

분당 흉기난동 사건 피해자 유족들은 범인 최원종이 항소심에서 감형받을까 노심초사 중이다. 유족은 딸이 사망할 때까지 병원 치료비를 검찰로부터 지원받았다. 검찰이 범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고 선지급한 피해자 지원금이다. 그런데 범인의 변호인들이 이를 피해 보전 근거 자료로 재판부에 제출했단다. 실제 감형 사유로 판단한 판례가 있다고 한다. 유족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검찰 지원금을 받았을지 의문이다. 항소심 재판에서 최원종이 무기징역을 면하면 유족들은 사망 피해자인 딸에게 못할 짓을 한 셈이 된다. 이게 정의인가.

범죄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형량은 비상식적이고, 감형 사유 대부분이 시대착오적인 탓에 법적 정의 실현은 지연되고 좌절된다. 글로벌 코인 사기범 권도형은 미국 법원이 아니라 한국 법원에서 재판받으려 몬테네그로에서 법정투쟁을 벌인다. 조두순은 어린 영혼과 육체를 말살하고도 12년 형기를 마치고 사회에 복귀했다. 부산 돌려차기 폭행범의 20년 형에 피해자는 20년 뒤에 나는 죽을 수도 있다며 절규했다.



사기범죄 양형기준이 워낙 미미하니 늘려봐야 거기서 거기일 테다. 정부가 지난해 입법에 나선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국회 법사위에 머물다 폐기될 운명이다. 22대 국회엔 1심, 2심 징역형 선고자들이 금배지를 달고 등원할 테고, 법사위에선 대장동 피고인 변호사들이 법원을 호령할 테다. 법원이 물렁하니 공화국의 법전에서 정의가 묘연해졌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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