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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은 병이라는 걸 알고 있다 [당신의 병명은 마약 중독·(4-4)]

공지영·이시은·이영지
공지영·이시은·이영지 기자 jyg@kyeongin.com
입력 2024-07-26 10:50 수정 2024-07-2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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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처리장 필로폰’ 마약청정국 민낯

‘우리나라는 아니겠지’

우리가 무심한 사이, 조용했지만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4년 연속 전국의 하수처리장에서 마약류 검출 여부를 조사했는데, 모든 하수처리장에서 4년 연속 빠짐없이 ‘필로폰’이 검출됐다. 그 외 암페타민, 엑스터시, 코카인 등 다양한 마약성분까지 ‘골고루’ 나왔다.

경기도와 인천은 전국 최대치로 필로폰이 검출됐다. 가장 많이 검출된 지역은 경기도 시화하수처리장이다. 천명당 일일 평균 사용추정량이 4년연속 제일 많은데, 4년 통틀어 평균값이 124.31㎎이다. 그 외에도 수원, 굴포, 안산, 석수, 성남, 안양(박달) 순으로 필로폰이 검출됐다. 경기 시화 다음으로 높은 곳이 인천 남항하수처리장이다. 남항은 4년 평균값이 67.84㎎이다.

하수역학 기반 마약류 실태조사 결과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장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전국 하수처리장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이제 마약이 안퍼진 곳이 없다”며 “마약중독과 관련한 모든 것을 이제 우리 사회의 양지로 꺼내야 한다. 이제 양지에서 예방교육을 해야 하고, 양지에서 치료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괜한 말이 아니다.

범죄이면서 병인 마약, 대놓고 말하지 못해

사실 정부도 이미 알고 있다. 마약중독은 범죄이면서 병이라는 사실을 깊게 인지하고 있다. 경기도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대놓고’ 말하지 못할 뿐이었다.

정부도 집중단속·적발과 함께. 치료와 재활에 방점을 찍는 추세로 정책을 내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마약류 투약이나 중독으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24시간 전화상담이 가능한 ‘1342 용기 한걸음센터’를 구축, 익명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권역별 치료보호기관과 재활서비스제공기관 등을 확대해 접근성 개선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

용인시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공공마약중독치료센터에서 직원들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경인일보DB

용인시 새로운경기도립정신병원 공공마약중독치료센터에서 직원들이 환자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경인일보DB

경기도는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전국 최초로 공공마약 중독치료센터를 시작했다. 경기도는 지난달 24일부터 용인 경기도립정신병원 내에 마약류 치료 ‘전담’병상을 운영하고 있다. 마약중독자만을 전담으로 맡겠다는 의지다. 시작은 10병상, 안정실 3병상이지만 이용 수요 등을 보고 병상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문을 연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현재 3명이 입원했다.

경기도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도 그 심각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최소한 마약 중독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있는 경기도민이 마약 치료를 위해 인천 참사랑병원으로, 경남 국립부곡병원으로 ‘원정’까지 가서 또 무한정 대기하다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는 상황만은 막겠다는 취지다. 병원 관계자는 “유선 상담 문의 등 중독자들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며 “치료 뿐 아니라 재활센터, 자조모임 연계, 지역사회 연계서비스 제공 등 회복을 위한 다양한 제도를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뒤를 이어 서울시도 오는 10월, 은평병원에 서울시마약관리센터를 만들어 상담과 검사, 치료·재활, 마약 관련 학술 연구까지 포괄적인 기능을 담아 운영하겠다는 구상을 가지고 있다.

공공이 마약 치료·재활의 적임자

전문가들은 공공이 마약 치료·재활을 도맡아야 되는 적임자라고 강조한다. 수익성을 따질 수밖에 없는 민간의료기관에선 제대로 마약 치료·재활시설을 운영하기 어렵다. 공공의료기관들이 나서 안정성을 바탕으로 치료와 관리를 담당하는 컨트럴타워가 돼야 한다. 이렇게 정부 및 지자체가 마약중독 치료·재활 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중요한건 이제부터다. 치료재활시설이 제대로 운영되기 위한 의료진, 행정적 연계 시스템 등 확실한 체계가 갖줘져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청소년 마약사범

“청소년 마약사범은 정말 많이 늘었어요. 우리 병원 입원환자 중 15%가 청소년이에요. 외래진료에서도 심심찮게 볼수 있습니다. 제가 치료한 환자 중 가장 어린 친구가 중학교 1학년이었어요.”

청소년 마약 투약은 정부의 책임

금연·성교육 있지만 마약은 없어

식당 상호 난무… 경각심 없는것

김재성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숙하게 청소년이 마약문제에 시달린다고 했다. /경인일보DB

김재성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숙하게 청소년이 마약문제에 시달린다고 했다. /경인일보DB

김재성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숙하게 청소년이 마약문제에 시달린다고 했다. “약물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깊이 아이들 사이에 파고들었어요. 불우한 가정환경을 가졌거나, 지나치게 입시 압박을 받거나, 여러가지 이유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찾는 게 값싼 마약이에요. 치료한 청소년 환자들이 ‘반 친구들 절반은 다 쓴다’ ‘노는 친구들은 다 필로폰을 하는데, 치료받는 얘들은 없다’고 말하는 경우를 많이 봤죠.”

배한진 변호사도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마약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게 체감이 돼요. (사무실로) 10대 청소년이 부모님과 같이 상담을 오는 일이 늘었죠. 청소년 마약문제는 아무래도 법적 지식이 없고, 판단력 자체가 미숙하니 범죄 자체가 대형급으로 확대돼 입건되는 경우가 많아요. 쉽게 말해 비행청소년의 일탈행위가 최근엔 마약으로 넘어오는 그런 상황이죠.”

범죄에 대한 무지를 떠나 투약 후 부작용에 대해서 아무런 판단력이 없는 청소년들은 ‘호기심’으로 마약을 접하는데, 텔레그램 등 온라인 마약판매는 이들의 무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최적화돼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텔레그램이 청소년 판매를 위한 홍보에 주력하고 있어요.
홍보 부서를 마련하고
새로운 투약자를 만들기 위해 이벤트를 열기도 해요.

“텔레그램이 친숙한 청소년들에게 아예 텔레그램 안에서 기업화돼 (청소년 판매를 위한) 홍보에 주력하고 있어요. 광고메뉴판에 마약을 광고하는 홍보부서가 있고, 새로운 투약자를 계속 만들기 위해 마약방 참여하면 무상지급하겠다는 이벤트성 무료 (마약) 던지기도 해요. 결국 그동안의 예방교육이 잘못된 겁니다. 마약의 종류가 어떤건지, 살빼는 약 등 의약품도 왜 위험한지, 초중고 수준별로 자세히 알려줘야 하고, 학교·학급에 모여서 서로 이야기하면서 토론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중독이 되지 않게끔 ‘마음’을 상담하고 단련하는 교육도 필요하구요.”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장은 청소년이 마약을 투약하는 건 ‘정부의 책임’이라고 꼬집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마약을 했다는 건 그 책임은 정부에 있는 거에요. 예방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을 겁니다. 지금 20·30대 성인들도 금연·성교육은 받았겠지만 마약은 받아본 적이 없어요. 교육도 못받아본 상태에서 사회 인식은 ‘마약김밥’ ‘마약떡볶이’ 같이 마약에 대한 경각심 조차 없으니, 마약에 대한 경계가 없는 거에요. 마약예방교육에 집중하지 않는 교육부, 정부가 문제입니다. 그나마 요즘 학생들은 이제서야 교육을 시작하고 있어요. 의료용 약물사용법이나 약물관리 등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하나하나 짚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마약 손대면 가족이 무너진다… 안전망 있어야

아울러 전문가들은 마약중독을 간병하는 ‘가족’을 위한 지원도 튼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활하고 회복하는 과정은 절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다.

아들이 교도소에 간 날 제 삶도 무너졌어요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 때문에 숨었어요
곪을대로 곪아 우울증까지 왔습니다

김재성 원장은 회복과정에서 혼자 있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회복이 이뤄지기 위한 가족교육 또한 필수적이다. 미드저니로 마약 중독자 모습을 출력한 모습. /미드저니

김재성 원장은 회복과정에서 혼자 있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회복이 이뤄지기 위한 가족교육 또한 필수적이다. 미드저니로 마약 중독자 모습을 출력한 모습. /미드저니

김재성 인천 참사랑병원 원장도 가족의 힘을 강조했다. “회복과정에서 혼자 있는 게 가장 위험해요. 누군가의 지지나 애정어린 감시, 위로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만 하는데, 아무래도 가족이 함께 해야 하죠. 그러려면 가족이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하는지 가족교육이 필요하고 회복을 위한 가정환경도 필수적입니다.”

특히 취재진이 만난 가족들도 마약중독자를 간병해야 하는 가족의 어려움과 지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마약중독에 빠진 아들을 구하기 위해 해외를 떠돌다 결국 자수했고, 변호사에게 더 강한 처벌을 요구해야 했던 이선민 기독교마약중독연구소 이사장도 아들을 간병하며 무너졌던 지난 날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들이 마약중독으로 교도소에 간 날, 제 삶도 무너졌어요. 부모가 똑같은 죄인이 되는거죠. 마약중독은 범죄에 연루된,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이 강하니까 가족이 다 같이 숨었어요. 우리 역시 (해외생활을 한 것도) 그게 아들을 지키는거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곪을대로 곪아 우울증까지 왔습니다.”

마약중독자 가족의 이야기는 이제껏 조명받지 못했다. 마약에 대한 편견은 중독자를 음지로 몰아넣었다. 곁을 지킨 가족의 삶도 온전할 수 없었다.

“마약중독자와 그 가족들이 숨어버리면,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아요. 치료받지 못하면, 마약중독의 끝이 죽음인 것처럼 가족들도 끝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정도로 폐해가 심각합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도 5년 전부터 마약중독자를 간병하는 가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가족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장. /박영덕 센터장 제공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도 5년 전부터 마약중독자를 간병하는 가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가족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사진은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센터장. /박영덕 센터장 제공

우리가 만난 또 다른 가족인 이경선(가명)씨도 같은 목소리를 냈다. “가족들 모두 치료를 받아야 해요. 아이가 구속됐을 때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순간적인 해리가 올 정도로. 가족 중 누군가 마약중독이라면, 가족이 같이 마약퇴치운동본부를 꼭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처음엔 너무 무섭겠지만, 부모가 아는 만큼 도울 수 있어요. 마약에 대해 배우고, 알면 안심이 되고 같이 위로도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가족 대상 마약퇴치운동본부 프로그램.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의 가족 대상 마약퇴치운동본부 프로그램.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도 5년 전부터 마약중독자를 간병하는 가족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가족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 마약중독자 가족들이 모이는 자조모임도 유일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마약중독자의 가족을 교육하고 치료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에게 다시 묻는다. 마약중독은 여전히 범죄일 뿐인가. 마약중독의 다른 얼굴, 질병코드 T40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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