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스, 美 공화당 최연소 부통령 후보
"왜 변하려 않는지" 비판만 할 뿐
연민 있다면 변화 외칠게 아니라
변할수 있게 도움 줘야하지 않는가
트럼프 선거구호 전락 잘못된 선택 |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
초선의 상원의원 J.D.밴스가 미국 공화당의 역대 최연소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그를 러닝메이트로 낙점한 것이다. 부통령 후보 지명과 함께 그의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흐름출판, 2017년)가 다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힐빌리'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에 사는 가난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말이다. 러스트 벨트는 주로 북동부 5대호 주변의 쇠락한 공장지대를 일컫는다. 쇠락해 공장설비에 '녹(rust)'이 슬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부 뉴욕주와 펜실베이니아주를 포함해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간, 일리노이, 아이오와, 위스콘신 등 중서부와 중북부 주들을 일컫는다.
러스트 벨트의 한복판 오하이오주 미들타운에서 태어난 밴스는 성장기를 줄곧 그곳에서 보냈다. '힐빌리의 노래'는 힘겨웠던 성장기를 담담하면서도 격정적으로 풀어낸 회고록이다. 성장기 밴스를 절망케 한 건 경제적 빈곤이 아니었다. 술에 의존해 사는 데다 수시로 애인을 갈아치우는 엄마의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낄 대상을 찾지 못했고, 목표 의식을 가질 수도 없었다. 그런 정서적 빈곤을 극복하도록 보듬어준 건 '할모'라고 부르는 외할머니였다. 덕분에 밴스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에 입대해 이라크에서 복무했고, 이후 오하이오주립대학교를 거쳐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가족과 고향마을에 대한 연민과 향수로 출발한 책은, 결국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 그들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된다. 초반부에선 잭슨과 미들타운 사람들의 모습을 애틋하게 그린다. "잭슨 사람들은 지나가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은 물론이고, 눈더미에 빠진 낯선 이의 자동차를 빼내기 위해 기꺼이 자기 시간을 내어줄 뿐 아니라, 운구차 행렬이 있을 때면 예외 없이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와 부동자세를 취한다."
연민은 곧 답답함으로 전환된다. "잭슨은 상냥한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약물 중독자도 널려 있고, 여덟 명의 아이를 만들 시간은 있었지만 부양할 시간은 없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 이상 있다(…). 많은 이가 푸드스탬프(Food stamp)에 의지한 채 살아가며 땀 흘리는 노동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그의 말에 힘이 실리고, 급기야 정치적 성향마저 엿보인다. "힐빌리 중에는 이른바, 복지여왕(Welfare queen)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있다. '할모'가 입버릇처럼 '노동자를 위한 정당'이라고 말하던 민주당의 정책이 사실 허울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었다."
밴스는 성공한 힐빌리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흙수저에서 '개천용'이 된 것이다. 대부분의 힐빌리는 여전히 잭슨과 미들타운 등지에서 하층민 노동자로 힘겹게 살고 있다. 성공한 변호사에서, 촉망받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에게 러스트 벨트의 가족과 이웃은 더 이상 연민과 향수의 대상이 아니다. "왜 변하려 하지 않는지, 왜 최소한 자신의 삶을 지켜내려 노력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비판할 대상일 뿐이다.
바로 그 부분에서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그들에게 연민이 있다면 무책임하고 막연하게 변화를 부르댈 것이 아니라, 변화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것 아닌가. 대안을 제시하고 실천적 활동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조용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곁이 되어주려 애써왔던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밴스의 '힐빌리의 노래'는 힐빌리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대신 트럼프의 선거 구호로 전락했다. 트럼프는 힐빌리 출신 밴스를 전격 부통령 후보로 지명, 선거에 적극 활용할 모양이다. 철 지난 구호이고, 잘못된 선택이다. 노회한 바이든을 따돌리는 데까지는 유용했을지 모르겠지만 '밈통령(밈+대통령)' 카멀라 해리스에겐 통하지 않을 듯하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