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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성단] 100억에 팔린 동교동 사저

윤인수
윤인수 논설실장 isyoon@kyeongin.com
입력 2024-07-31 19:55 수정 2024-07-3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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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가 100억원에 매각됐다. 뉴스를 접한 민주화운동 세대의 심경은 착잡하다. 동교동 사저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상도동 사저와 함께 군부독재 시절 야당 정치인들의 아지트이자 반독재 투쟁의 본산이었다. 그 시절을 겪은 세대에겐 동교동과 상도동 사저는 단순한 개인주택이 아니라 민주화 서사를 증거할 역사적 공간이다.

매각 당사자가 DJ의 막내 아들 김홍걸 전 의원이라 당혹스럽다. "상속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각을 결정했다"는 변명엔 기가 막힌다. 김 전 의원에게도 각별한 동교동 사저다. 아버지가 유신정권과 5공정권 치하에서 옥고를 치르고 사형선고를 받았던 집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도청을 피하려 필담을 나눴던 집이다. 아버지가 미국 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동교동 집에 들어설 때의 감격도 생생할 것이다.

김 전 의원은 민주당 위성정당의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의원이 됐다. 아버지 김대중과 어머니 이희호 여사의 후광 덕분이었다. 자질은 부모의 명성에 한참 부족했다. 다수의 고가주택을 보유하고도 허위 재산등록으로 당선 5개월 만에 당에서 제명됐다. 결정적으로 이 여사 사후에 의붓형 김홍업 전 의원과 동교동 사저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일으켜 가문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이 여사는 분쟁을 예상한 듯 동교동 사저에 '동교동 사저를 김대중·이희호 기념관으로 사용하라'는 유언장을 남겼다. 기념관 관리를 맡긴 김대중기념사업회에 DJ의 노벨 평화상 상금 8억원을 기부했다. 지자체가 동교동 사저를 공공기관으로 매입할 경우에 대비해 매각대금 상속 지분까지 정해 놓았다. 김 전 의원은 상금과 동교동 사저를 독차지하려다 법정에서 제동이 걸렸다.



상속세 때문에 매각했다지만, 공론화 됐다면 얼마든지 지킬 수 있는 역사적 장소였다. DJ 유산으로 호남을 독식해 온 민주당은 물론 권노갑, 한화갑을 비롯한 동교동계 아저씨 삼촌들이 발벗고 나서 문제를 해결했을 테다. 가족도 당도 김대중기념사업회도 모르게 매각할 공간이 아니었고 매각할 처지도 아니었다.

동교동계는 올해 김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기념사업의 핵심 공간이 100억원에 팔렸다. 부자 3대 가기 힘들다지만 정치 3대 가기도 못지 않다 싶다. '김대중·이희호'의 명예는 떨어지고 민주화 세대는 소중한 역사를 잃었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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