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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칼럼] 인천경실련의 선택

입력 2024-08-13 19:56

6월말 기준 '비영리민간단체' 1만3943개
시민단체 탈을 쓴 정치집단 나쁜 사례도
김 사무처장, 민선8기 전위조직 혁신단 맡아
'시정의 파트너인가 감시자인가' 묻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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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발한 한 시민단체의 입장문이 생뚱맞다. "광화문 응원에 찬물을 끼얹는 패륜적 행위를 낳는 것에 끝나지 않고, 젊음의 열정과 함성을 비롯해 치킨업체 등 수많은 자영업자마저 불황의 늪에 빠져들도록 하면서 이 사회에 상상할 수 없는 혼란을 가져왔다"고 했다. 경찰은 축구대표팀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로 온 국민이 '치킨을 즐길 욕망마저 망가뜨린' 죄부터 수사해야 할 판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도 같고.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가 1만3천943개다. 밤하늘 별처럼 많다 보니 별의별 단체가 다 있다. 가장 나쁜 사례는 시민단체의 탈을 쓴 정치집단이다. 말하고 움직이는 본새로 보아 영락없는 정상배인데 속을 까발릴 수 없는 경우다. 공익과 무관한 이익집단도 마찬가지다. 가면 뒤에 숨겨진 민낯이 시꺼멓다. 오죽하면 '시민단체의 개혁 대상 1호는 시민단체'라는 말이 나왔을까.

시민단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부터다. 가장 앞줄에 선 단체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었다. 출범하자마자 토지공개념 도입과 주택임대차제도 개선이라는 이슈를 내걸고 당시로선 희소한 공론의 장을 확장해 나갔다. 이어 인천경실련이 활동을 시작한다. 중앙조직의 취지와 원칙을 지키면서 지역분권화의 기치까지 높이 들었다. 뜻은 가상하나 무모한 도전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인천경실련이 우려와 회의를 딛고 일어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열정과 수고가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김송원 현 사무처장의 애씀이 컸다고 생각한다. 함께 걷던 이들이 이리저리 다른 길로 걸음을 옮길 때에도 '정치적 중립'과 '정부보조금 0원'이라는 경실련의 운영 원칙을 묵묵히 지켜온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지역사회가 인천경실련과 김 사무처장을 동일 인격체로 받아들이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인천경실련이 그이고, 그가 곧 인천경실련이다.

그런데 한결같았던 나의 시선이 최근엔 어지럽다. 왼쪽 눈으로 보는 그와 오른쪽 눈으로 보는 그가 달라서이다. 초점이 잘 안 맞는다. 민선 8기 유정복 인천시장은 취임하자마자 조례를 만들어 시정혁신단이라는 기구를 조직했다. 시정 전반을 혁신하겠다는 의지였는데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이가 시정혁신단장과 인천시의 신설 직책인 시정혁신관을 겸직하는 구조였다. 안팎으로 민선 8기를 상징하는 전위조직으로 받아들여졌다. 김 사무처장은 이런 시정혁신단의 부단장직을 맡고 있다가 단장이 석연치 않게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올해 초 그 자리를 잇는다.

'시민권력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Civilizing the State)'의 저자인 캐나다 지역사회 조직가 겸 협동경제 전문가 존 레스타키스는 사회안전망의 후퇴, 부채의 증가와 생활수준의 하락, 그리고 기후변화의 재앙적 결과 등 당면한 복합적 위기에 직면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정부의 대안으로 국가의 시민화를 제시한다. 기존 위계구조를 거부하고 광범위한 시민 참여와 지역화된 직접민주주의 기제가 결합한 형태다. 시민권력과 정부의 연대인 '파트너 국가'의 정체다. 지방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 크기를 줄여도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인천경실련과 김 사무처장을 긍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되겠다.

다른 시선, 시민단체를 감시자나 견제자로 보는 완고한 시선으로는 물음표를 가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김 사무처장이 단장으로 있는 인천시 시정혁신단이 대중교통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경실련 중앙조직 관계자가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검단 연장 노선을 두고 인천시의 요구를 수용치 않고 있는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의 무용론을 제기한다. 시의 허술한 대응은 따지지 않았다. 물음표는 더욱 커졌다. 누가 누구지? 누가 무슨 역할을 하는 거지?

그래서 묻는다. 인천경실련과 김 사무처장은 시정의 파트너(partner)인가, 여전히 감시자(watchdog)인가. 인천경실련이기에 묻는 것이다.

/이충환 서울대 객원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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