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까지 보릿고개에 시달린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도 만성적인 쌀 부족국가였다. 1972년 생산량이 높은 '통일벼'가 수확되면서, 1980년에는 재고량이 100만t을 넘어 쌀이 남아도는 시대가 됐다. 설상가상 식생활의 변화로 쌀 소비량이 뚝 떨어졌으니, 농민들은 풍년에도 창고에 쌓이는 재고 쌀 걱정이 먼저다. 2023년 기준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4㎏으로 역대 최저치, 1993년 110.2㎏을 소비했던 것과 비교하면 30년 만에 반토막 났다. 산지 쌀값은 올해도 직격탄을 맞았다. 80㎏ 한 가마에 17만8천476원, 20㎏에 4만4천619원이다. 지난해 보다 6~7% 또 떨어졌다. 정부는 쌀을 일부 사들여 시장에서 격리하고 쌀 소비를 촉진해 쌀값을 방어하지만 역부족이다. 지난해 시장격리에 9천916억원을 쏟아붓고, 보관비용 1천억원과 폐기비용 수백억원까지 말 그대로 '밑빠진 독'이다.
쌀은 식량의 의미를 넘어 한국인의 정체성이다. 삼국시대에 금·은과 함께 쌀이 화폐를 대신했고, 조선시대에는 쌀로 녹봉을 받고 쌀로 세금을 납부했다. 쌀밥을 마음껏 먹는다는 것이 성공의 척도였다. 1970~1980년대까지도 쌀을 사러 갈 때 "쌀 팔아오겠다"는 표현을 종종 사용했다. '사다'와 '팔다'를 거꾸로 말한 이유는 쌀이 돈이고, 돈이 쌀이라는 인식, 그 때문일 것이다.
선조들의 식생활 모습을 담은 사료를 보면 소반(小盤) 위에 소복이 눌러 담은 고봉밥이 놓여있다. 요즘 일반적인 공깃밥 210g의 2~3배는 족히 되는데, 대식가의 면모에 압도된다. 조선 후기 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도 보통 사람들은 한 끼에 5홉(900㎖), 성인 남성은 7홉(1천260㎖), 아이는 3홉(540㎖)을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평민들은 대체로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끼만 먹고, 점심은 간식 정도로 해결했단다. 밥 외에 다른 먹거리가 부족했으니 밥이 주요 영양 공급원이었다. 흰쌀밥은 양반들 차지였을 테고, 백성들은 잡곡밥을 먹었다지만 양곡 의존도가 높았음은 분명하다.
시대는 변해도 쌀의 가치는 지켜야 한다. 농협이 아침밥 먹기 등 범국민 쌀 소비 촉진에 나섰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살고, 밥심은 쌀심이다. 오늘 말복(末伏) 기력 충전식은 한식의 근본인 쌀밥이 답이다. 오랜만에 고봉밥 한술 뜨자.
/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