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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 출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서점가 역주행' 비결은

유혜연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입력 2024-08-15 19:04 수정 2024-08-15 20:05

천천히, 조용히, 꾸준히… 하루키처럼 나만의 취향을


15년전 출간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무한 경쟁 현대인에 휴식같은 문장 선사
올 상반기 판매량, 작년보다 47.6% 증가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펴냄. 280쪽. 1만4천500원


"#추구미(따라 하고 싶은 이상향)=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유튜브 쇼츠, 틱톡 챌린지 등 즉각적으로 뇌에서 도파민을 내뿜게 하는 고자극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 하지만 한편에서는 오히려 트렌드에 역행하려는 움직임이 일렁이고 있다.

이른바 '反도파민'. 이들은 천천히, 조용히, 꾸준히 자신만의 취향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매일 10㎞를 뛰고, 옛 LP 음반을 수집하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상은 이런 이상향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다. 15년 전 한국에 출간됐던 하루키의 베스트셀러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서점가에서 또다시 역주행하고 있는 배경이다.

'소확행'이라는 조어(하루키 1986년 作 '랑겔한스섬의 오후')의 창시자로서 한때 동시대 사람들의 감성을 건드렸던 하루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추구미'에 부합하는 일상 속 통찰로 시대를 뛰어넘어 독자를 포섭하고 있는 것이다. 예스24에 따르면 판매량은 지난해와 비교해 올해 상반기에만 47.6%가 훌쩍 뛰었다. 해당 에세이는 지난 2007년 일본에서 발표한 뒤 한국에는 2009년 소개된 구간(舊刊)이다.

이런 '신(新) 하루키 열풍'은 경기도 내 주요 도서관에서도 나타났다. 도내 인구수 상위 3개 지자체인 수원시, 용인시, 성남시 도서관에서 해당 에세이는 지난 14일 기준 평균 89%의 대출률(수원 93%·용인 73%·성남 100%)을 나타냈다. 책 대부분이 대출·예약 중이라 빌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대개 서점에서 상위 5위권 내의 신간이 대출률이 높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구간임에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셈이다.



통합도서관 검색
경기도 내 주요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대출 경쟁이 치열하다. 각각 (왼쪽부터) 수원시, 용인시, 성남시 통합도서관에서 해당 책을 검색했을 때 대부분의 보유 서적이 대출 중인 상태로 나타난다.

인기 요인은 책 바깥에서도, 책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우선 현재 생활체육으로 러닝 종목이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 관심도를 높였다. 스마트폰의 친목 도모 애플리케이션에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삼삼오오 모여 하천이나 도심을 달리는 '러닝 크루'가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해당 에세이에서는 꾸준히 달리면서 생기는 근육 덕에 건강해진 신체와 정신적인 안정 등 러너로서 마주한 일상의 변화를 담담히 서술한다.

무엇보다 에세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글을 읽기 쉽게 대중적으로 써내려가면서도 동시에 감각적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하루키는 미국 하와이·뉴욕·매사추세츠와 일본 주요 도시를 배경으로 여유롭게 달려나가며 자신만의 기준을 이야기하는데, 매사 사회의 기준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우리네에게 왠지 모를 위로를 건넨다.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신이 수집한 재즈와 클래식 LP 음반이 꽂힌 책장 앞에 앉아있다.

"어제는 롤링 스톤즈의 '베거스 뱅큇'을 들으면서 달렸다. '심퍼시 포 더 데빌'의 예의 '후후'라고 하는 펑키풍의 백코러스는 달리는 데 실로 안성맞춤이다. … 중요한 것은 시간과의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만큼의 충족감을 가지고 42킬로를 완주할 수 있는가, 얼마만큼 자기 자신을 즐길 수 있는가, 아마도 그것이 이제부터 앞으로의 큰 의미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 아닐까."

2024년 다시금 소환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한 경쟁과 과도한 자극으로 만성 무기력증에 빠진 현대인들에게 하루키는 평온한 휴식 같은 문장을 선사한다. 어쩌면 숨 가쁜 한국 사회가 '하루키적인 삶'을 '추구미' 그 자체로 만든 까닭인지도 모른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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