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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새의 '텃세'… 돌아오지 않는 원주인 저어새

정선아
정선아 기자 sun@kyeongin.com
입력 2024-08-15 20:07 수정 2024-08-16 17:08

남동유수지 작은섬 유해조수 득세
둥지 작년 100여개 올해는 7개뿐
인천시, 장대 설치·포획 등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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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야생동물로 지정된 민물가마우지 무리가 지난 14일 오후 인천 남동유수지의 작은 인공섬에 자리잡고 휴식을 하고 있다. 2024.8.14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민물가마우지' 수백 마리가 멸종위기 1급 동물 저어새의 대표적 번식지 인천 남동유수지에 수개월째 터를 잡고 있다. 저어새 보호 활동가들은 저어새가 번식지를 잃게 될까 걱정하고 있다.

올해 2월 민물가마우지가 인천 남동유수지에 찾아와 인공섬 2곳(큰 섬, 작은 섬) 중 작은 섬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다. 올해 남동유수지에서는 민물가마우지 600여 마리가 확인됐다.

대만, 홍콩, 일본 등에서 겨울을 보내고 4월에 남동유수지로 돌아온 저어새들은 민물가마우지에 밀려 큰 섬에만 둥지를 틀었다. 지난해 작은 섬에서는 저어새 둥지 100여 개가 발견됐지만 올해는 7개만 확인됐다.

민물가마우지는 몸길이가 약 82㎝로 저어새보다 크고 몸 전체가 광택이 있는 검은색을 띤다. 공격성이 강해 갈고리 모양을 한 뾰족한 부리로 저어새 등 다른 새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높은 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트는 습성을 가졌지만 도심 속에서 높은 나무를 찾기 어려워지자 저어새처럼 바닥에 둥지를 틀기 시작했다. 겨울 철새였던 민물가마우지는 2000년대 초반부터 기후변화로 인해 1년 내내 한반도에서 서식하는 텃새로 변했다.



저어새 보호 활동가들은 내년에도 민물가마우지가 저어새보다 빠르게 남동유수지 인공섬을 차지해 저어새 번식지를 빼앗을까 걱정한다.

한국물새네트워크 상임이사이자 조류 연구가인 이기섭 박사는 "민물가마우지가 남동유수지에서 휴식을 취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올해처럼 대규모로 번식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이어 "민물가마우지가 저어새를 공격하거나 저어새의 둥지를 빼앗는 경우가 종종 발견됐다"며 "내년에도 민물가마우지가 저어새보다 두 달 빨리 남동유수지의 인공섬들을 차지하면, 앞으로 저어새들이 남동유수지에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인천시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인천시는 민물가마우지의 번식이 끝나는 9월 중 남동유수지 작은 섬 꼭대기에 높고 얇은 장대를 촘촘히 설치할 계획이다. 장대를 설치한 후에도 민물가마우지가 이곳에 머무르면 포획도 검토키로 했다. 민물가마우지는 지난해 7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돼 지자체장의 허가가 있으면 포획할 수 있다.

인천시 환경안전과 관계자는 "다리가 긴 저어새와 달리 민물가마우지는 다리가 짧아 장대 사이를 걸어다닐 수 없다"며 "장대를 설치한 후에도 변화가 없을 때 민물가마우지 포획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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