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미술관展 작품사진 속 현장
1999년 타계 이후 모습 그대로 보존
드브레 직접 짠 화구와 미공개 작품들
루아르강 내려다보는 거장 숨결 남아
프랑스 투르市 ‘레 마데르(Les Madères)’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마음의 고향인 아틀리에(작업실). 작가의 살아생전 예술적 흔적을 살필 수 있는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프랑스 서정적 추상주의의 거장 올리비에 드브레(1920~1999)가 생전 머물며 작품 세계를 펼쳤던 아틀리에 ‘레 마데르(Les Madères)’ 역시 사후 25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곳곳에 그의 숨결이 남아있었다.
지난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고속열차 테제베(TGV)를 타고 2시간을 달려 도착한 투르(Tours)시의 투르역. 이곳에서 다시 차로 30분가량 이동하면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 자리한 레 마데르가 나타난다. 현재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7월15일자 15면 보도)’의 제1 전시실에서 대형 사진으로만 보던 그곳이다.
올리비에 드브레의 작품을 총망라한 해당 전시를 보다 보면 호기심이 생긴다. 작가 타계 이후에도 아틀리에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람객의 궁금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눈앞에 펼쳐진 레 마데르, 올리비에 드브레 아틀리에의 앞마당은 평화로운 전원적 풍경을 자랑했다. 파란 대문을 지나자 무성하게 자란 풀과 푸른 나무 사이에서 가장 먼저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택 옆의 낮은 산 아래로는 커다란 암벽을 뚫어 만든 아틀리에가 숨어있었다. 바깥보다 온도는 낮고, 습도는 높게 유지되는 해당 공간은 와이너리를 연상케 했다.
드브레 가문이 관리하고 있는 레 마데르는 지난 1999년까지 작가가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보존 중이다. 이곳은 올리비에 드브레와 프랑스 샤를 드골 정부 초대 총리 미셸 드브레의 아버지인 소아과 의사 로버트 드브레가 1930년대부터 소유한 사유지로, 아틀리에·저택·밭 등으로 이뤄져 있다.
“바위를 파서 만든 레 마데르의 건축 형태는 이곳(프랑스)에서 일반적이죠. 그는 이 아틀리에에 머물며 작품에 대한 고민을 해나갔어요. 레 마데르 너머의 길을 따라가면 그가 사랑한 거대한 루아르 강도 나와요.”
거대한 암석 속 3개의 공간을 잇는 2개의 통로. CCC OD(올리비에 드브레 현대 창작센터) 마린 로차드씨의 안내를 따라 첫 번째 통로 안쪽으로 들어가자 정돈되지 않은 미술 도구들이 눈에 띄었다. 올리비에 드브레가 직접 브러쉬 여러 개를 엮어 만들었다는 대형 화구. 커다란 캔버스에 자신의 감상을 어떻게 재현할지 골몰하던 그의 모습을 상상케 했다.
굵은 기둥 아래에는 미완성 작품과 타원형의 미공개 작품들이 비스듬히 기울인 채 놓여있었다. 아틀리에에 남아 있는 해당 작품들에서도 작가 특유의 투명한 색상 활용과 추상적 표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두 번째 통로 뒷공간에서는 예술적 고뇌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지난 1989년 홍콩 오페라 하우스의 대형 무대 극장막을 제작할 당시 수첩에 기록해뒀던 메모와 스케치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1950년대부터 작업한 추상화 ‘기호 시리즈’와 함께 탄생했던 조각 작품 일부도 만날 수 있었다.
마린 로차드 CCC OD 학예사는 “올리비에 드브레가 타계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이곳의 모든 물건은 그가 살아생전 사용하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며 “그는 여러 개의 캔버스를 두고 동시에 작업했기에 다른 색상의 브러쉬가 많이 필요했다. 산과 강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그에게 영감을 준 것들을 그렇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아틀리에 위로 난 조그마한 산비탈을 따라 올라가면 역사적인 장소와 조우할 수 있다. 이른바 ‘피존 하우스(비둘기 집)’. 유럽의 중세·근대 건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비둘기를 사육하던 장소다. 이곳의 피존 하우스는 지난 1940년 6월 나치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독일군이 프랑스를 침공했을 당시 프랑스군이 루아르 강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했을 때 있던 일이다.
산에서 내려와 다시 앞마당으로 돌아왔다. 풍부한 유량이 흐르는 루아르 강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말년의 올리비에 드브레. 반짝이는 강물이 가져다준 영감을 캔버스에 붓질하는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쳤다. 동양의 낯선 도시에서 온 이방인에게 레 마데르가 선사한 찰나의 순간이다. 아틀리에가 간직한 거장의 숨결은 그렇게 수원과 투르, 두 도시를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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