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50주년 맞아 지역 작가와 콜라보레이션
최초 국산 고유모델 ‘포니’ 전선망 독점 공급
직원들 “애사심 커져”, 작가 “독특한 메세나”
인천에서 태동한 자동차 전장 제조기업 경신그룹이 50주년을 맞아 직원들과 지역 작가가 함께 기업의 역사를 대형 판화로 새기는 특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 찾은 인천 송도국제도시 경신그룹 본사의 한 회의 공간. 이 회사 베테랑부터 신입까지 10여 명의 직원이 가로 2.44m, 세로 1.22m 크기 나무판에 흰 종이를 깔고,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나오는 ‘뉴진스’ 신곡을 들으며 나무판 위를 쿵쾅쿵쾅 밟고 있었다.
언뜻 보면 나무판 위에서 여러 사람이 춤추는 것 같은 이 광경은 실은 ‘목판화’를 찍는 모습이다. 이날 프린팅은 판화 작업의 마지막 단계로, 직원들은 지난 6월 말부터 매주 한 차례씩 경신 50년사를 기록하는 판화에 참여하고 있다.
인천 곳곳의 풍경을 주민들이 참여해 판화로 제작하는 ‘커뮤니티 판화’ 작업을 하고 있는 윤종필 작가가 협업 중이다. 윤종필 작가는 “경신그룹 직원 21명이 두 팀으로 나눠 각각 오른쪽과 왼쪽 판화를 작업하고 있고, 두 개의 판화를 붙여 가로 4.88m, 세로 1.22m 크기의 대형 판화를 완성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작가와 협업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예술에 관심이 많은 경신그룹 이승관 부회장이 직접 제안했다고 한다. 경신 관계자는 “경신의 역사를 담은 예술 작품을 함께 만드는 과정을 통해 50주년 의미를 되새기며 직원 간 소통의 장을 만든다는 취지도 있다”고 말했다.
경신그룹은 1974년 9월1일 이기홍 창업주가 경신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인천 가좌동에 공장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인체의 신경망’에 해당하는 자동차 ‘와이어링 하네스’를 생산해 한국 최초의 고유 자동차 모델 현대차 ‘포니’에 독점으로 공급하며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중흥기를 함께했다. 1985년부터 김현숙 회장 체제에서 해당 분야 세계적 기업으로 확장했고, 첨단 자동차 분야로 진출하며 지난해 ‘10억불 수출탑’을 수상한 기업이다.
판화 작품에는 경신의 출발점인 현대 ‘포니’, 이기홍 창업주와 근로자, 경신의 생산기지들과 주력 제품인 와이어링 하네스 등 50년 역사를 응축했다. 복잡한 배선망의 와이어링 하네스를 표현한 부분이 감각적이다.
판화 프로젝트에 참여한 입사 21년차 부품품질팀 최진호(47) 팀장은 “다들 판화가 처음이라 걱정했는데, 굉장한 하모니와 집중력으로 완성 단계까지 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입사한 친환경부품설계팀 김현덕(28) 연구원은 “회사 입사를 준비하면서 역사를 접하긴 했지만, 예술 작품으로 만나게 되니 애사심이 커진다”고 했다.
경신의 판화 작품은 내달 50주년 기념식에서 공개된다. 총 12장을 찍어 경신 본사와 전국 사업장에 전시할 예정이다. 윤종필 작가는 “기업 역사를 예술 작품으로 아카이빙한다는 점이 독특하고, 단지 금전적 지원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기업이 직접 참여하는 ‘메세나(Mecenat)’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동영상·데이터 시각화 중심의 색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