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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3개의 점이 만나 그려낸 '우리'라는 곡선… 김애란 '이중 하나는 거짓말'

유혜연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입력 2024-08-29 18:59 수정 2024-08-30 13:35

13년 만에 돌아온 김애란의 장편소설
각자 아픔 지닌 세 고등학생 성장 통해
미온한 듯 힘 있게 '휴머니즘' 담아내


김애란
소설가 김애란이 지난 21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13년 만의 장편 신작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소개하고 있다. 2024.8.21 /문학동네 제공

■ 이중 하나는 거짓말┃김애란 지음. 문학동네 펴냄. 240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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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조금은 특이한 고등학생 세 명이 있다. 자신을 대신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엄마를 둔 '채운'. 죽음을 앞둔 사람을 알아볼 수 있으며 한때 투병 중인 엄마가 죽기를 바랐던 '소리'. 엄마의 자살로 어느 날 가족이 사라져버린,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지우'.

이들은 학교에서 외톨이거나 외톨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나는 그저 세상의 한낱 '작은 점'에 불과하다고, 듣는 것만으로 용기가 샘솟는 성장담은 결코 내게 주어질 수 없는 삶이라고 자조하면서.



하지만 이들은 체념하는 와중에도 일상을 순순히 포기하지는 않는다. 스마트폰 앱으로 영어 공부를 하거나, 친구의 반려 동물을 애지중지 돌보기도 하고,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한다. 채운·소리·지우는 저마다 각자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세 명의 고등학생, 파편적으로 찍혔던 세 개의 작은 점은 무수한 사건 속에서 기대와 좌절을 맛보며 천천히 곡선으로 이어진다. 세상에는 오직 '나'뿐이라던 이들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우리'라고 지칭할 주어가 생긴다.

신간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한국 문학의 '젊은 거장'이라고 불리는 김애란(44)이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13년 만에 들고온 장편 소설이다. 평단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사랑받는 작가라는 점에서 이번 신작을 향한 기대감은 상당했다.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해당 소설은 예약 판매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특히 서점가의 큰 손, 3040세대 여성이 전체 구매자의 55%가량을 차지하며 김애란을 향한 확고한 지지를 보여줬다.

소설은 '거짓말 게임'과 '죽음을 보는 능력'이라는 제법 독특한 설정에서 시작된다. 책 제목과 동일한 '이중 하나는 거짓말' 게임은 채운·소리·지우의 담임선생이 만든 일종의 자기소개 방식이다. 새 학기, 한 명씩 교탁으로 나와 친구들에게 본인을 소개해야 하는 상황. 학생들은 다섯 개의 문장으로 자신을 설명하되, 그중 한 문장에는 반드시 거짓을 포함해야 한다. 아이들끼리의 가벼운 유머 속에 혼재된 진실과 거짓은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말 속에 자연스레 녹아든 거짓말은 주인공 소리의 비범한 능력과 맞물려 기대와 좌절, 희망으로 이어진다. 가정 폭력을 일삼던 아빠를 칼로 찔러 식물인간으로 만든 채운은 효자인 척하며 소리에게 아빠가 곧 죽을 건지 봐달라고 부탁한다. 영문을 모르는 소리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채운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하지만 채운의 아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다. 문상객들은 홀로 장례를 치르는 채운을 동정한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채운은 어제와는 아주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아버지를 찌른 사람은 난데 사람들이 나를 위로합니다. 나는 무릎 꿇고 고개 숙여 그들에게 절합니다. 이곳은 내가 벌받는 자리입니다. 위로가 벌이 됩니다."

소리와 지우도 마찬가지다. 각각 자신의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했던 그릇된 바람과 열등감을 정면으로 맞닥뜨린 뒤 내면의 어둠을 조금씩 거둬간다. "…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리는 데다 거의 표도 안 나는 그 정도의 변화"일지라도 분명한 한 걸음, 앞으로의 내디딤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장 없이 탄생한 어느 고등학생들의 성장담,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이 또 한 번 펼쳐낸 미온하면서도 힘 있는 휴머니즘이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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