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먹고 살만 하다 싶어졌을 무렵부터 생각해보면 학교 수업시간에 종종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등이 학습의 주제로 다뤄졌다.
스물네살, 2000년생인 한여빈씨의 기억도 그렇다.
신림동 살 때 같은 동네 반지하 침수된 기억
기후위기가 먼나라 얘기 아닌 것 깨달아
교육영상 나오는 빙하 위 북극곰은 우리였다
#한여빈 대학생 기후행동 경기대표
알수록 무기력 느끼지만 포기 안해
내 일상 문제, 뭐라도 해야지 생각
텀블러 챙기고 플로깅 나서는 이유
“학교 다닐때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교육을 매번 들었던 기억이 나요. 북극곰이 빙하 위에 떠 있고 동물들이 죽어가는, 그런 문제들로.”
익숙하고 낯익은 지구 온난화는, 그러나 어디까지나 북극곰의 위기였을 뿐이다. 내가 직접 겪기 전까지는.
“서울 신림동에 살았었는데, 거긴 아직 달동네가 있어서 저지대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요. 2022년에 비가 엄청 많이 왔었는데 우리동네 반지하가 침수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충격이었죠. 기후위기가 먼나라 얘기가 아니구나 하고.”
학교 교육영상에서 봤던 빙하 위의 북극곰이 바로 우리였다. 그걸 깨닫고 기후위기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했다. 알면 알수록, ‘무기력’해졌다.
“대학생 기후행동 단체에 들어가 처음 활동을 시작했을 때, 솔직히 너무 암울했어요. 세계 기후정책, 우리나라 기후정책 수준을 교육받았는데, 와 이정도 수준이면 해결 못하겠다 싶었어요. 저 뿐이 아니에요. 적극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활동을 하지 않는 일반 친구들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에 무기력함이 깔려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뭘 해봤자 바뀌겠느냐는 비관적인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근데 그 친구들도 가만히 보면, 카페 가서 빨대 안 쓰려고 노력하고 분리수거도 엄청 열심히 합니다.”
사실은 모두 무서운 거다. 언젠가는 닥칠 그 불행이. 그래서 여빈씨와 친구들은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고,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을 한다. 별것 아닌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다.
“요즘 부쩍 많아진 벌레들을 보면 기후위기가 일상 속 내 문제로 느껴져요. 벌레들 가만히 보시면, 어렸을 때 보던 그런 곤충들이 아니에요. 저희 단체에서 매년 7월 셋째주 주말에 기후페스티벌을 여는데, 날씨가 매번 너무 달라요. 작년엔 너무 더웠는데 올해는 폭우가 내렸어요. 기후 문제가 나의 문제인거죠.”
“기후위기는 소행성 충돌처럼 한번에 날아와 죽는게 아니라, 서서히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것이라 생각해요. 마치 청주 오송지하차도 사고처럼 언제 어디서 내 문제로 닥쳐올 지 모르는 불안감과 함께..”
서서히 퍼지는 ‘기후우울증’
기후불안 수준 젊을수록 높게 나와
날씨 변화·매스컴 전하는 정보 원인
불행한 현실 속 비출산 택한 여성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지난 3월 ‘한국인의 기후불안 수준 및 특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연구원은 전국 만 19~65세 성인 2천 명을 대상으로 기후불안 척도를 조사했다. 평균 결과값은 5점 만점에 ‘1.9점’. 지난해 발표된 기후불안 평균 점수 ‘1.49점’보다 상승했다. 5점 만점에 1.9점이라 다소 낮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결코 낮지 않다. 같은 방식으로 조사한 캐나다는 평균 1.66점, 독일은 1.81점을 기록했다.
특히 이 조사에서 눈에 띄는 항목은 연령별 기후불안 수준이다.
기후불안 점수는 젊은 연령일수록 높게 나타났다. 19~29세는 평균 2.02점을 기록했다. 30~39세는 1.99점, 40~49세는 1.94점, 50~59세는 1.77점으로 점차 낮아졌다. 60~65세는 1.75점으로 가장 높은 연령대가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미국 심리학회에선 이미 기후위기로 인해 우울한 증상을 겪는 현상을 ‘기후 우울증’으로 명명했다. 예측할 수 없이 변하고 있는 기후 앞에 한없는 무기력감과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이병철 한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의학적으로 우울증을 원인에 따라 ‘기후 우울증’이라고 분류하고 있진 않지만, 날씨 변화와 매스컴에서 접하는 기후에 대한 내용이 우울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 7년 차, 성남에 사는 이혜인(33)씨는 ‘비출산’을 결심했다. 어렸을 땐 그도 모두가 힘을 모은다면 기후위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일상으로 다가오는데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회를 보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스스로 대한민국의 평범한 모범생이라고 밝힌 혜인씨가 출산을 고려하며 맞닥들인 고민은 “아이는 목숨과도 바꿀 그런 존재인데, 아이가 (미래에) 너무 불행해지는 게 두렵다”는 감정이었다.
우리가 마주하는, 기후 위기와 관련된 수많은 데이터는 앞으로 태어날 미래 세대에게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에서도 기후 관련 의제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게 혜인씨 눈에 보였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혜인씨 선택을 두고, 남편도 양가 부모도 주변 지인들도 결코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는 기후위기
#4남매 엄마, 기후환경 교육 강사 민주희씨
커피 공부하다가 알게 된 기후문제
“내가 마시는 커피와도 연관 있어”
‘왜’가 있어야 지속적 노력도 가능
4남매의 엄마 민주희(46)씨에게도 기후 위기는 이미 당면한 현실이다. 내 아이들이 겪게 될, 아주 가까운 미래의 불행이다. 기후위기가 ‘내 문제’라고 생각한 계기는 사실 우연이었다. 15년 전 안성으로 이사 온 주희씨는 바리스타 양성 강사로 활동하며 ‘내가 좋아하는 커피가 왜 한국에선 재배가 안될까’라는 궁금증에서, 커피와 기후의 연관성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커피공부를 해야 하니까 커피 재배지역의 기후와 우리 기후의 차이를 공부하는 차원에서 기후강사 양성과정 수업을 들었는데, 1순위와 2순위가 바뀌는 경험을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선, 기후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구나. 무언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죠.”
포기하고 싶을 때 주희씨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지금 주희씨는 기후환경 교육 강사로 활동하며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만나는 모두에게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스스로를 긍정주의자로 자처하는 주희씨도 가끔은 기후위기를 생각하면 ‘큰 웅덩이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라서다. 그냥 나도 편하게 살자, 다 포기하자 싶을 때 주희씨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기후위기를 접할 때, 공부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일회용품 사용 자제하고 텀블러 쓰고 이런 행동도 중요한데, ‘이걸 왜 해야 하나’ 그걸 알아야 하는 게 중요해요. 왜 라는 질문을 채우기 위한 공부를 해야 활동도 끊임없이 가능해져요.”
“어떤 큰 구렁텅이에 빠져 있으면 나올 힘이 없어서 그 안에 갇혀 있다 누군가 손에 이끌려 나오는 상황들이 있어요. 기후위기 교육을 하다보면 저도 가끔 느끼죠.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어차피 기후위기가 일어났고 지구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최종적으로 멸종할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많아졌죠. 그래도 누군가는 의지를 갖고 해나가야 해요. 나 스스로 바뀌고 개선해나가는.”
2000년생 여빈씨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포기하고 싶지만,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이제 경제성장을 멈추고 덜 소비하고 덜 생산해야 한다고 방법을 말하면, 윗 세대들이 살아온 삶과 상충돼 이해를 못받긴 해요. 그들에겐 경제성장이 곧 삶이었으니까, 경제성장을 좀 놓자는 말이 ‘다 굶어죽자는 거냐’고 들리시죠.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미래는 지금의 어린이들, 청소년, 청년들의 것이기도 하니까요. 말하고 싶어요. ‘저희는 살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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