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여객운송 중단됐던 일영역 부활
고양~양주 연결… 일제 강점기 추진
물자 수송 목적 계획·분단으로 단절
1961년 개통된 이후 관광 목적 강화
주요 승객 대학생 'MT 문화 메카로'
현재 폐허처럼 변했지만 과거엔 붐벼
연말 재개통 목표 '새로운 추억' 기대
고양~양주를 잇는 교외선은 '고양 쌍굴'(4월 30일자 5면 보도=시간 관통한 '고양 쌍굴'… '역사가 들려주는' 조용한 증언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2)])과 같은 목적으로 계획됐다. 쌍굴이 경성수색조차장과 경의선을 연결하기 위한 터널로 만들어졌다면 교외선은 경의선으로 수송되는 물자를 서울 시내로 곧장 들이지 않고 서울 동북부로 우회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획된 노선이다.
철도가 근대화의 상징이자 수탈을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자 수송이라는 교외선의 주목적은 해방과 분단 국면에서 변화를 맞는다.
노선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부터 추진됐지만, 분단으로 단절되며 활용이 어렵게 된 것이다. 교외선의 한쪽 끝인 고양은 신의주부터 내려오는 경의선과 연결되고 동쪽 끝인 의정부는 경원선과 연결돼 국토 중앙에서 이어지도록 계획한 것이었으나 신의주-원산 모두 분단으로 오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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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선 일영역 철로 모습. 교외선은 단선 철도로 운영됐다. 2004년 여객 운송이 중단됐고 2014년 폐선된 뒤 올해 연말 재개통을 앞뒀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
1944년 2월 착공, 1945년 8월 공사가 중지된 교외선의 운명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1961년 7월 10일 능곡~가릉역 구간이 열리며 교외선이 개통됐다. 미군부대 우회 목적으로 사용된 임시역 가릉역이 1963년 8월 20일 폐지되고 의정부역으로 연결되면서 교외선은 20년 만에 비로소 본 모습을 찾게 된다.
다만 애초 물자 수송에서 관광으로 목적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 교외선이 단순하게 고양~의정부를 이었던 것이 아니라 서울역, 왕십리역과 연계되며 서울의 관광수요를 경기북부로 이전하는 효과를 낳아서였다.
교외선은 서쪽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도는 '서회선'과 동쪽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동회선'으로 움직였다. 서회선은 서울역~능곡역~의정부역~성북역~왕십리역~서울역순으로 운행했고 동회선은 서울역~왕십리역~성북역~의정부역~능곡역~서울역순으로 순환했다. 전 구간을 이동하는데 2시간여가 소요됐다고 한다.
교외선의 주요 승객은 대학생이었다. 승용차가 전면 보급되기 전, 서울 시내에서 열차를 타고 말 그대로 교외로 향해 MT를 즐기는 문화가 교외선을 바탕으로 보편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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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역 대합실 모습. 야외에 설치된 대합실은 파고라 형식으로 역사 아래 쪽에 자리잡고 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
9일 찾은 양주 일영역. 오랜 기간 사용되지 않고 방치돼 수풀이 우거진 역사에 기자 외에 또 다른 승용차가 들어왔다. 나이가 지긋하게 든 남녀 내렸는데 과거 추억을 회상하는듯,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천천히 역사 주변을 탐색했다. 30여년 전 MT를 하기 위해 이 역에서 내린 청춘들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일영역에 사람이 내리지 않은 건 2004년의 일이다. 같은 해 4월 통일호 폐지로 여객 운송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일영역 남동측으로 공릉천이 흐르는데 일영계곡과 유원지가 있던 공릉천은 관광객이 넘쳐 났다. 역으로 진입하는 골목으로 주택가가 들어서 있는데, 좁다란 1차로 주변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의 모양이 과거 이곳이 역세권이었다는 사실을 희미하게 짐작케 한다.
흥성했던 일영역의 과거는 역사 진입 전 발견할 수 있는 파고라 형태의 대형 광장대합실로 짐작할 수 있다. 일영역 역사가 광장 대합실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기차에 탑승하려면 대합실에서 역사로 계단을 올라야 하는 구조다. 야외 대합실은 공릉천 일영유원지 등의 위락시설로 가는 관광객들로 붐볐을 것이다.
양주에서 조금 더 가면 교외선 고양 대정역이 나온다. 2004년 여객 취급이 끝난 뒤 10년이 지난 2014년 대정역은 보통역에서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됐다. 대정역을 마지막으로 교외선에서 영업 중인 역은 한 곳도 남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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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영역 대합실 모습. 야외에 설치된 대합실은 파고라 형식으로 역사 아래 쪽에 자리잡고 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
39번 국도의 서측이자 영주산과 묘하나골산의 동측인 대정역 주변으론 화훼 농가가 많다. 대정역은 다른 교외선과 마찬가지로 광복 이전 착공했다가 광복과 함께 공사가 중단됐고 1961~1963년 사이 개통된 교외선과 함께 부활했다. 대정역은 다른 역들과 달리 1967년 임시승강장으로 영업을 개시해 운영 시기가 조금 늦다.
인근 군부대 활용 용도가 있었다는 점이 특이하다. 화물 물량이 많은 보급부대의 특성과 맞물려 군전용 철도가 부대 안까지 진입하는 지선이 설치돼 있었던 것이다. 이 지선 때문에 본선 1개 만 플랫폼을 통과하는 단선철도였던 교외선에서 유일하게 지선 방식의 운영 모습을 볼 수 있는 기차역이 바로 대정역이다.
일영역이 단선인 교외선의 모습과 관광 목적을 잘 설명해준다면, 대정역은 교외선의 또다른 목적인 군 물자 수송의 단면을 잘 나타낸다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경기 북부 권역을 잇는 교외선은 새 출발을 앞뒀다. 운행 재개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도민들이 출퇴근과 이동 활성화 목적으로 재개를 꾸준히 요구해 왔고, 이를 수용한 경기도와 고양·양주·의정부시가 국회와 국토교통부, 국가철도공단, 한국철도공사 협조를 받아 올해 연말 재개통을 추진한 것이다.
교외선이 재개통하면 당분간 평일·주말·휴일 등 일 20회 운행할 예정이다. 정차역은 대곡·원릉·일영·장흥·송추·의정부 6곳이다. → 노선도 참조
운행이 재개되면 대곡역도 일영역도 폐허처럼 변한 지금과는 달리 다른 이야기를 갖게 될 것이다. MT의 추억을 회상한 60~70년대생들에 이어 교외선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는 세대가 생길 것이고 교외선 위엔 한겹의 기억이 더 덮어지게 된다.
일제강점기 시작한 교외선은 산업화 시기 관광열차로 활용됐고 착공 80년이 지나 재개통-새출발을 앞두고 있다. 교외선엔 어떤 추억과 기억이 새로이 새겨질까. 교외선이 다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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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선 일영역 철로 모습. 교외선은 단선 철도로 운영됐다. 2004년 여객 운송이 중단됐고 2014년 폐선된 뒤 올해 연말 재개통을 앞뒀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